기고-텃밭 잡초를 매다(2)
기고-텃밭 잡초를 매다(2)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8.17 16:27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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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석/합천 수필가
이호석/합천 수필가-텃밭 잡초를 매다(2)

서서히 잡초가 제거되니 잘 보이지 않던 오이, 가지, 고추, 토마토가 서서히 제 얼굴을 드러내며 반갑다고 인사를 한다. 역시 사람이나 식물이나 주위 환경이 깨끗해지면 자체가 돋보이는구나 싶다.

잡초를 매는 동안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한 가지는 논밭의 잡초가 농부들에게 꼭 귀찮게만 하는 존재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더위에 축 늘어진 게으름을 쫓고 삶에 활력소를 가지게 하는 좋은 점도 있는 것 같다. 오늘 아침, 나도 잡초 매는 일을 시작할 때는 아주 귀찮은 일로 생각하면서 망설이기도 하였지만, 땀에 흠뻑 젖어 일할 때는 이 잡초가 무더위 속에서도 나를 억지로라도 이렇게 움직이게 하고,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였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는 예전에 아버지께서 하시던 말씀이 떠올랐다. 평소 농사를 지으시면서 “흙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언제나 심고, 가꾼 대로 수확하게 해준다”고 하셨다. 지나고 보니 나에게 매사에 부지런하고 진실하게 살도록 에둘러 당부를 하신 것 같았다. 나는 가끔 이 말씀을 생각하며, 흙과 가까이 있는 것이 진실에 가깝게 사는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지난 초봄, 텃밭을 정리해 놓고 시장에 몇 종류의 모종을 사러 가기 전에 올해는 오이를 다섯 포기만 심을 계획으로 적당한 곳에 거름과 비료를 주고 심을 곳을 장만해 놓았다. 그런데 오이 모종을 사 올 때 일곱 포기를 사 왔다. 남은 두 포기는 귀찮아서 비료 거름도 주지 않은 옆 공터에 그대로 심었다.

이를 심을 때 나는 ‘비료, 거름을 준 곳이나 그냥 심은 곳이나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두 포기 오이는 나에게 ‘천만의 말씀’이라며 답했다. 내 편의를 합리화하려는 아전인수 격 생각이었을 뿐이었다. 그곳의 모종은 잘 자라지도 않았고 오이도 별로 열지 않았으며 어쩌다 열린 작은 오이는 모두 꼬부라져 볼품이 없었다. 나는 이를 보면서 생전 아버지께서 “흙은 절대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하시던 말씀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오후가 되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우산을 받쳐 들고 텃밭 주위를 돌아본다. 골골이 무성하던 잡초를 매고 난 텃밭은 더벅머리를 갓 이발하고 난 사람처럼 말끔하다. 작은 성취감과 상큼함에 기분이 좋다. 앞 밭의 오이, 가지, 고추는 무더위 속에 수시로 내리는 비를 맞으며 생기가 넘쳐 너울너울 춤추고 있고, 뒤뜰 감나무에는 알밤만 한 단감이, 사과나무에는 주먹만 한 사과들이 해맑은 소년들의 얼굴처럼 풋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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