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황혼육아(黃昏育兒) (1)
기고-황혼육아(黃昏育兒) (1)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8.27 15:24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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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덕경/합천 수필가
노덕경/합천 수필가-황혼육아(黃昏育兒) (1)

K가 요양병원에 갔다고 한다. 친구와 한동안 왕래가 없어 연락했더니 요양병원에 있다고 그의 아내가 말한다. 양방, 한방병원을 왕래하며 3년이나 치료하며 돌보았는데, 아내도 아들딸도 손주도 몰라보는 지경이 되어 요양병원에 보냈다고 한다.

K를 만난 건 직장에서였다. 직원아파트에서 함께 살았다. 고향도 인접했고 연배라 가깝게 지냈다. 시골에서 별난 먹거리가 온 날은 식구들과 함께했고, 주말에도 가족 나들이를 자주 했었다. 그뿐만 아니라 아이들 유치원도 함께 보냈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학군이 좋다는 곳으로 옮겨서도 이웃에 살았다.

K는 2남 1녀를 두었다. 첫째 아들은 어릴 때부터 총명했었다. 국립대학 법대를 나와 행정고시에 매달렸다. 둘째 아들은 공무원이 좋다며 졸업과 동시에 합격하고 임용되어, 직장에서 만난 동료와 결혼했다. 며느리가 직장 때문에 출산을 미루자, 애들 봐준다고 독려하여 연년생의 손주를 봤다.

처음에는 자식들 키워 놓고 심심했는데 첫 손주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자랑했었다. 막내딸도 직장에서 동료 교사와 결혼하여 남매를 낳았다. 딸도 맞벌이로 애들 봐 달라고 보채어, 어쩔 수 없이 맡았다. 이웃에 살면서 아침에 맡기고 저녁에 데려가곤 했었다.

맏이는 행정고시를 도전하다 아깝게 떨어져, 재수 삼수하다 지쳐서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방콕’ 신세가 되었다. 집안의 종손이요, 맏아들이다. 나이는 들어가고 살아갈 방도를 찾은 것이, 은행 대출을 받아 아파트 단지에 24시 편의점을 개설해 주었다. 그런대로 사업을 하니 중매가 들어와 늦게나마 결혼을 시켰더니 아들 둘을 낳았다. 편의점은 많은 시간과 인력이 요구되는 업종이다. 며느리가 출근하여 함께 관리해야 한다며 손주들 봐 달라고 했다.

K의 아내는 자신의 아들딸 세 남매를 키웠는데, 자식들과 맏며느리의 형편상, 모른다고 할 수 없어, 집에서 손주 6명이나 돌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K는 부부 모임에 혼자 나와 ‘어린이집 원장님은 불참’이라고 했었다.

원장님은 집에서 하루 종일 기저귀를 갈아주고 유치원, 초등학교 등·하교를 챙기고, 분유와 이유식, 간식, 끼니까지 챙겨야 했다. 그뿐인가. 안전사고를 대비하여 늘 곁에서 감시를 해야 했다. 천방지축인 애들을 생각하여 가구의 모서리, 바닥 매트, 콘센트에 보호 장치하고, 정리 정돈을 했지만 집안은 매일 난장판이었다.

가끔 애들을 체중계에 올려보고 조금 늘었으면 그동안 고생한 성과가 있어 좋았지만, 기대보다 늘어나지 않았으면 마음이 언짢았다. 그렇게 애들 때문에 집에서 꼼짝도 못하고 매일 반복되는 생활이 징역살이라고 했다. 옛 어른들 말씀에 ‘애 볼래, 땡볕에 밭맬래’ 물으면 열에 여덟은 밭 맨다고 했었다. 중노동보다 애들 보는 것이 그만큼 힘이 든다고 했었다. 자식들 형편과 손주 사랑하는 마음에서 육아를 맡았지만, 나이는 먹어가고 몸에 무리가 와 만사가 귀찮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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