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황혼육아(黃昏育兒) (2)
기고-황혼육아(黃昏育兒) (2)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8.28 15:44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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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덕경/합천 수필가
노덕경/합천 수필가-황혼육아(黃昏育兒) (2)

K는 퇴근하여 집에 들어가면, 당신을 잘 못 만나 외출도 여행도 못 하는 신세가 되었다며 아내가 바가지를 긁는다고 했다. 아내의 잔소리가 싫어 그는 집 주변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시간을 보내어 바가지 소리를 피했다고 한다.

여섯 손주를 돌보는데 어찌 사고가 없었을까. 하루는 아내가 손주를 데리고 시장 갔다가 잠깐 물건 보는 사이에 6살 손주가 차도에 내려갔다. 손주는 달리는 오토바이에 부딪쳐 다리 골절 사고를 당했다. 급히 병원 응급실로 옮겨 큰 수술을 받았지만 죄인이 되어 며칠을 며느리 얼굴도 못 쳐다봤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각자의 가정으로 돌아갔다. 부부가 여유를 즐기려고 하니, 이제는 남편인 K의 행동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예전의 일은 물론이고 금방 했던 것도 잊어버려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하니 흔히 말하는 기억 장애, 환각 증상인 ‘알코올성’ 치매 진단이 내려졌다.

K와 함께 모임을 했는데 몇 달을 나오지 않더니 K의 아내가 전화 왔었다. 남편은 치매 진단으로 모임에 나갈 수가 없다고 했다. 친구들과 K의 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K는 동료였던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고, 얼굴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하는 수 없어 그의 아내에게 K가 빨리 쾌차하길 바란다며 인사하고 나왔었다.

그를 본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요양병원에 갔다고 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좋은 동료요, 친구였는데···. 이제는 만날 수가 없으니 서글픈 마음 한량없다. 황혼까지 아내는 아내대로 자식들 키우느라 고생했고, 또한 손주들 키우느라 그 고생을 했으니 허무함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서산에 해는 기우는데 우리의 삶이 허무한 것 같아 쓸쓸함을 금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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