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유언이나 묘비명이 남긴 교훈(27)
칼럼-유언이나 묘비명이 남긴 교훈(27)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8.28 15:44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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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유언이나 묘비명이 남긴 교훈(27)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에는 ‘세계의 정복자’·‘광기와 풍운의 왕 몽고의 정복자’라 불렸던 티무르(Timur) 황제(1336~1405·69세, 재위:1370~1405·35년)의 무덤이 있다. 구르-에미르(Gur-Emir)라는 이 무덤은 ‘왕의 무덤’이라는 뜻으로, 구운 벽돌로 외관을 치장하고, 내부에는 대리석으로 깔았다. 티무르의 무덤 자리는 진한 녹색 옥으로 된 판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이 옥은 몽골이 중국 황제의 궁전에서 약탈해온 것으로 추정된다.

무덤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나의 평온함을 어지럽히는 자는 누구든 … 피할 수 없는 징벌과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라는 비문(碑文)이 새겨져 있다. 티무르의 평온함을 어지럽힌 자는 소련이었다. 2차대전 당시, 우즈베키스탄은 소련에 편입된 공화국이었다. 1941년 소련의 유명한 인류학자이자 고고학자인 미카일 게라시모프(Mikhail Gerasimov:1907~1970)가 티무르의 두개골을 연구해 진짜 얼굴을 재현하고 싶어 했다. 그는 이오시프 스탈린(Iosif Stalin) 당 서기장에게 무덤을 열어보아도 되겠는지를 물어보았다. 스탈린도 세기의 영웅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어 열어보라고 지시했다.

1941년 6월 20일 티무르의 무덤이 536년 만에 열렸다. 그랬더니 이상한 냄새가 나왔다. 장뇌·송진·장미·유황이 뒤섞인 그런 냄새였다. 연구자들은 그 냄새가 시신을 방부 처리한 물질에서 나온 것이라고 단정했다. 이틀 후 평온함에서 깨어난 티무르의 저주가 나타났다. 1941년 6월 22일,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독일 나치의 아돌프 히틀러는 선전포고도 없이 소련을 침공했다. 작전명은 ‘바르바로사(Operation Barbarossa)’였다. 스탈린과 게라시모프는 티무르의 무덤을 열지 말라는 사마르칸트 원로들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 3명의 원로들은 티무르의 무덤을 열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충고했다.

히틀러의 침공으로 소련은 큰 타격을 입었다. 독일과 그 추축국들은 3백 만 명의 병력을 동원해 소련을 상대로 역사상 최대의 육상작전을 전개했다. 독일군은 모스크바를 향해 진격했고, 소련군은 엄청난 사상자를 내며 패주했다. 독일군은 우크라이나 키예프를 점령해 65만 명을 포로로 붙잡기도 했다. 엄청난 희생을 겪고 나서야 스탈린은 티무르의 무덤을 덮으라고 지시했다. 1942년 12월 티무르의 무덤은 덮여졌고, 관 뚜껑은 납으로 봉합되었다.

이듬해인 1943년 2월 소련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200만 명의 사상자를 내는 인류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투를 치르면서 독일군을 패퇴시켰다. 그리고 2차 대전에서 승전국이 되었다. 티무르 무덤을 열어본 미카일 게라시모프는 두개골을 토대로 한 법의학적 관점에서 티무르 얼굴 형상을 그려냈다. 하지만 그 후 아무도 티무르의 관(棺)을 열지 않았고, 관을 공개조차 하지 않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고대부터 실크로드 선상에 있었으며, 사마라칸트·타슈켄트·코칸트·부하라 등 주요 도시들이 동서 교역의 길목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동과 서의 세력 변동이 발생할 때 공격의 대상이 되어왔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 당나라의 고선지 장군, 몽골의 징기스칸이 이 나라 도시를 연결하는 길을 지나갔으며, 14세기엔 티무르라는 영웅이 사마라칸트에 도읍을 정해 대제국을 형성했다. 우즈베키스탄인들은 티무르를 민족의 영웅으로 받들고 있다.

징기스칸의 후손이라 전해지는 그는 1369년 에미르(Emir:왕)에 즉위해 사마르칸트를 수도로 정했다. 그는 몽골제국을 재건한다는 야망을 가졌다. 그는 천재적인 군사전략과 탁월한 리더십으로 영토를 확장했다. 그의 기마군단(騎馬軍團)은 적지에서 치러진 170일간의 전투에서 단 하루도 패배하지 않았다. 그는 33세 때 원정을 시작해 34년간 말 위에서 직접 전투를 지휘했다. 그의 군대가 이동한 거리는 지구 둘레에 해당하는 4만km에 이른다. 그의 제국은 중앙아시아에서 이란·아나톨리아반도(지금의 터키)·북인도에 이르렀으며, 수도 사마라칸트는 당대 최고의 도시로 발전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몽골(元)의 원수(怨讎) 나라인 명(明)나라를 정벌하러 떠났으나, 도중에 병사하면서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울부짖는다고 죽음이 깜짝 놀라서 도망가지를 않는 것이다.” 130여 년의 짧은 존속기간이었지만 티무르 제국은 몽골을 이어 중앙아시아 전역을 통일한 대제국으로 동서 실크로드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 1405년이었다.

그는 죽어 사마르칸트에 있는 구르-에미르에 묻혔다. 이 능묘는 그가 죽기 전에 자신의 손자이자 상속자 무함마드 술탄을 위해 짓기 시작했지만, 결국 자신이 그 안에 묻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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