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말이 씨앗 된다(1)
칼럼-말이 씨앗 된다(1)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9.05 14:48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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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산스님/진주시 문산읍 여래암 주지
범산스님/진주시 문산읍 여래암 주지-말이 씨앗 된다(1)

물이 열기를 받아 공중에 떠 있는 것이 구름이고, 구름이 땅으로 내려오면 비가 되며, 고여 있으면 물이고, 얼면 얼음이 되며, 이슬, 우박, 눈도 된다. 조건에 따라 모양이 바뀌고, 기후와 시간에 따라서 고체, 액체, 기체로 변하지만 본질은 하나이다. 인간도 시간과 조건에 따라 모습을 바꾸어가며 육도를 윤회한다.

옛날, 천하의 미인이 있었다. 그러나 팔자가 사납고 하는 일마다 실패뿐인 기구한 운명이었다. 그녀는 원래 덕 높은 바라문의 딸로 태어났다. 바라문은 인도의 4성(四姓) 중 최고 지위인 승려(僧侶)계급이다. 그들은 임금님보다 윗자리에 있는 신(神)의 후예라 하며, 정권의 배심(陪審)을 하는 거물급들로서 사실상, 신을 대표하는 권위자들이었다. 만약, 이들을 해한 사람은 신을 해한 것과 같다 하여 엄벌에 처해졌다.

그녀는 이런 집안 출신으로 뛰어난 미모와 풍부한 학식에 교양도 만점이었다. 바라문들은 범행(梵行), 가주(家住), 임서(林棲), 유행(流行)의 네 시기로 구분, 어렸을 때는 부모 밑에서 생활하다 성장하면 집을 떠나 스승을 모시고, 폐타(吠陀)를 학습한 후 장년이 되면 귀가, 결혼 생활을 하다 노년이 되면 가사(家事)는 자식들에게 맡기고 산의 숲속에서 고행(苦行) 수도(修道)한 후, 유랑생활을 하며 남들 시주 물로 살아가는 수행 생활을 한다. 그녀는 이웃 바라문집에 매우 총명하고 인자한 청년과 결혼, 달콤한 신혼생활을 하던 중 귀여운 아들을 낳았다.

그 후 둘째를 임신, 임신 10개월 동안 시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다. 둘째를 친정에 가서 출산코자 큰애와 남편 세 가족이 정담을 나누며 친정을 향하여 다정히 길을 걷던 중 갑자기 산기를 느껴 급히 나무 아래에 자리를 펴고 출산을 하고 말았다. 남편은 뒷바라지 후 피로에 지쳐 저편에 가서 잠을 자고 있었다. 산모도 깊은 잠에 빠졌다가 새벽녘에야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켜 남편을 깨우러 갔더니 남편은 독사에 물려 죽어 있었다. 그녀는 통곡하다 기절하였다. 한참 후 큰아이 울음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정신을 수습, 큰아이를 업고 갓난애기는 품에 안고 흔들거리는 걸음으로 친정집을 향해 터벅터벅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가는 길에 수심도 깊고, 폭이 넓은 강이 나왔다. 아이 둘을 데리고 헤엄쳐 건넌다는 것은 산모의 몸으로는 무리였다. 궁리 끝에 큰아이를 강가에 내려놓고 갓난애기를 안고 죽을힘을 다해 헤엄쳐 강을 건너가 언덕 위의 나무 아래 갓난아기를 잠시 눕혀놓고, 건너편 큰아이에게 가려는 찰라 큰아이가 엄마! 엄마! 하고 울면서 강 쪽으로 오다가 쭉 미끌어져,강물에 떠내려 가버렸다. 그녀는 황급히 강물에 뛰어들었지만 아이는 행방불명이다. 산모는 만신창이가 되어 천근만근 늘어진 몸을 이끌고, 언덕 위 나무 아래 눕혀둔 갓난아기를 데리러 갔다.

그런데 갓난애기는 늑대가 잡아먹고 피 흔적만 남아있었다. 시체에 칼질한다더니 이런 변고도 있단 말인가? 한해에 시부모님과 자녀 둘, 남편까지 다섯이나 죽다니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다. 부인은 미친 사람처럼 머리칼을 산발한 채 맨발로 비틀거리며 친정집을 향해가는 길에 친정아버지 친구를 만났다. 그분에게 친정 안부를 물었더니, 이건 또 무슨 날벼락인가?

며칠 전, 친정집에 불이 나서 친정 가족 모두 불에 타 죽었다는 것이다. 통곡할 일 연발이다.
이 비통한 소식을 접하고, 비명 속에 기절했다 깨어나 보니, 천만다행으로 아버지 친구분 댁에서 따뜻한 보호를 받고 있었다. 그분은 인간성이 좋아 늘 친딸처럼 자상하게 보살펴주셨다. 세월이 흘러 마음이 안정될 무렵, 그 집 이웃에 사는 바라문이 청혼을 하여, 바라문과 결혼을 하였다. 처음에는 잘 대해주던 남편이 술만 마시면 망나니로 돌변, 아내를 심하게 학대하고 고문을 하였다. 그녀의 어떤 말이 씨앗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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