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공산 당원, 훈장받은 자 5백명
진주성-공산 당원, 훈장받은 자 5백명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9.13 14:2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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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공산 당원, 훈장받은 자 5백명

홍범도 장군을 처단하자. 공산당 또는 유사 단체에 가입, 활동했으나 항일투쟁을 인정받아 건국훈장을 받은 자들은 전국에 약 5백 명이다. 이들을 한곳에 모아 홍범도 장군과 함께 무인도에 안장해야 할 대상인지 연구해 볼 일이다.

홍범도 장군은 1920년 6월 5일 만주 봉오동 전투에서 대한독립군 안무 장군과 함께 대한국민회 의용군 최진동 장군의 군무도독부가 연합하여 결성된 대한북로도독부 부대가 일본 정규부대 169명을 사살해 대승했다. 1920년 10월 21일에는 김좌진 장군, 서일 장군이 연합으로 일본군 19사단 보병연대 1천2백 여명을 사살한 대승을 달성했다. 곧 고동하 부대와 홍범도 장군과 함께 일본군 아스라 지대장의 100여 명을 섬멸하는 대 전과를 올렸다.

만주 방면에 살던 홍범도 장군 등은 1937년 소련군의 강제 이주 정책에 의해 허허벌판인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해 살면서 엄청난 고생을 했다. 말년에 고려 극장 수위장과 정미소 등에서 일하게 된다. 1962년 10월 25일 박정희 대통령 이름으로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는데 본인은 물론 아무도 신청조차 하지 않았지만 추서(수여)되었다.

1962년 당시 공적심사위원장과 위원은 문교부 장관, 서울대 교수, 연세대 교수, 동국대 교수, 단국대 교수, 국사편찬위원회 관계자들이다. 대통령 이름과 직인이 찍힌 훈장증, 유공자 증서가 추서되었다. 정부가 마음대로 주고 받았고 국내로 이장하고 흉상을 세우더니 버리자 이동하라 야단이다. 누가 해 달라고 했어? 지금까지 보훈부 지하 문서고에 보관하는 훈장증과 유공자증을 버리면 간단하다. 본인과 후손이 훈장 달라고 신청하지 않았는데 무슨 일이냐?

1968년에 총무처장관, 국사편찬위원회, 서울대 교수, 연세대 교수들 12명(총 21명)과 심사위원이 참여해 81명에게 건국훈장이 수여되었다. 1977년에는 원호처장, 치안본부 과장급 2명, 광복회장, 언론사 부장급, 교수 10명 등 총 37명 심사위원이 참여해 105명을 포상했다. 매회 포상자 명단을 보면 공산당 또는 유사 단체에 가입, 활동한 이들을 포상했다.

심사위원들을 무덤에서 부활시켜 왜 공산당 관계자들의 포상을 추진했느냐 따져 봐야 된다. 심사 당시 문서와 심사위원 일기를 확인해야 된다. 박근혜 대통령 당시 명명한 홍범도 해군함정 이름도 없애면 된다. 또 시신을 되돌려 준다면 국제적 망신일까요?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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