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진주에서 전생의 인연을 만나다(1)
기고-진주에서 전생의 인연을 만나다(1)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9.17 15:09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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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호/시인·수필가
장철호/시인·수필가-진주에서 전생의 인연을 만나다(1)

다른 날 보다 일찍 일어났다. 나의 고향 두미섬(頭尾島)에서 약 100여 년 전에 태어났으나(출토), 그 행방을 몰라 오랫동안 찾아 헤맸던 부처님(金銅釋迦如來立像)을 오늘 드디어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너무나 보고 싶고 궁금했는데 그 부처님이 국립진주박물관 수장고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열람 예약을 한 것이다.

박물관 직원의 안내로 지하 1층 수장고로 내려가면서 부처님을 만난다는 생각에 제대로 앞을 보지 못하고 계단에서 넘어질 뻔했다. 그곳에 마련된 흰색 실내화를 신고 마스크를 착용하게 했다. 부처님을 볼 때 유의 사항 몇 가지를 설명하면서 책상 위에 하얗고 도톰한 보를 까는 직원의 절제된 손끝은 매우 섬세하면서도 정갈하였다. “모든 유물은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합니다.” 백번을 들어도 옳은 말이다. 이렇게 부처님을 모실 준비를 다하고, 직원 혼자 2중의 시건장치를 열고 수장고 안으로 들어갔다. 수장고 문의 두께가 한 뺌은 넘어 보였고 직원 외는 출입할 수 없는 곳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이란 글씨가 쓰인 작은 상자를 가지고 나와 책상 위의 이불에 조심스럽게 얹었다.

준비해둔 얇은 고무장갑을 끼고 상자를 열어 보였다. 부처님은 흰 천에 쌓여 반듯이 누워 잠자고 있는 모습이었다. 덮어둔 천을 걷어내는 순간 부처님의 눈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이상하고 미묘한 떨림이 느껴지고 가슴이 뜨거워진다. 이 떨림이 무엇이란 말인가. 부처님의 온화한 미소에 들뜬 내 마음이 곧 안정되긴 했지만 두근거리는 가슴은 억누르지 못했다. 타의에 의해 전국의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다가 보호라는 명분으로 엄격하게 통제받는 수장고에 잠자고 있다니. 그래도 두미섬 사람들에게 친견을 허락하심은 우리 두미섬에 대한 자비심(慈悲心) 때문일까.

직원이 살아 숨 쉬는 부처님을 대하듯 조심스럽게 상자에서 꺼내 이불 위에 올려 보였다. 이 부처님이 두미섬에서 출토되었다는 생각 때문인지, 더없이 소중하게 다루는 직원의 행동과 말이 너무 친절하고 감사했다. 부처님은 입가에 약간의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 미소 속에는 왜 이제야 왔는지 물어보는 것 같다. 우측 귀 아래 부분이 잘려 나가고 손가락이 잘려 나가는 상처투성이면서도 입가의 저 고졸하고, 소탈하고, 다정스러운 미소는 무엇을 말하는 걸까. 깨달은 경지를 미소로 나타난 거룩함으로 보였다.

말없이 보고 있는 내 가슴속에서 울컥하고 쏟아져 나오는 감동과 함께 눈시울이 촉촉이 젖어 오는 진한 울림이 전율로 다가온다. 나와 같이 두미도 출신이기 때문일까. 같은 고향을 둔 부처님과 나는 부처님은 서방정토 아미타 세계를 다니시고 나는 삼천대천 사바세계를 다니다가 이곳 진주에서 만난다는 것은 전생부터 가지고 온 인연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찾는다고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매 이는 필시 부처님의 부르심의 결과이고 그렇다면 부처님이 내게 주는 필연의 메시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떨리는 손으로 부처님을 안아보았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감동 속에 두미섬의 파도가 출렁거렸고 갈매기 노래 소리가 들린다.

필자가 고향 두미도에 대한 향토사를 쓰면서 작고 큰 것 하나 빠지는 것이 없이 모두를 기록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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