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일상 탈출
진주성-일상 탈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10.10 15:4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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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일상 탈출

어제 같은 오늘을 매일같이 반복하다 보면 때로는 하루하루가 지루하게 느껴져 삶의 의욕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딱히 변화를 줄만 한 일을 만들 수도 없을뿐더러 이런저런 사정에 묶여있어 그럴 여유도 갖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이다.

젊은이들이야 일자리가 있어 하루해가 짧다. 날마다 같은 일이 반복되어도 직장동료나 또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즐기며 눈코 뜰 새 없이 쫓고 쫓기며 부대끼기도 하지만 열정과 의욕이 넘쳐서 나부대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하지만 일손을 놓고 현직에서 물러난 젊은 노인들의 하루해는 지독하게 굼뜨고 더디다. 젊은이는 세월이 더디 가고 하루해가 짧지만, 노인은 세월은 빨리 가고 하루해가 더디다. 온갖 소일거리를 찾아봐도 그게 그거고 언제나 개미 쳇바퀴 돌 듯한 어제 같은 오늘이고 오늘 같은 내일의 연속이다. 골프? 무소득이 용납하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 반기는 사람이 없고, 나홀로 드라이브? 산유국이 부럽고, 모여서 밥이나 먹어? 놀던 물이 달라서 서먹하고, 고스톱? 신물이 나서 날 샜고, 그린 골프? 백수가 몸살 한다고 시간에 얽매이는 것은 못 하고, 주거니 받거니 술이나 마셔? ‘아! 옛날이여!’다. 여자들이야 모여서 수다라도 떨지만, 남정네야 그런 재주도 없어 속절없이 독야청청하든지 독수공방하든지 양자택일밖에 할 수 없다.

40여 년 지기에게 모처럼 전화를 걸었다. “내일 9시 40분에 준비해서 집 앞으로 나와라” 어디 갈 건데?” “어디 가면 뭐할 건데 나오기나 해” “성질머리하고는” 다음날 그를 차에 태워 진주역 주차장에 차를 대 놓고 역사로 들어갔다. 삼랑진 발 진주행 1시 52분을 확인하고 10시 16분 발 삼랑진역 표 두 장을 달랬다. 눈치 9단인 그와 백수 9단이 만났으니 말은 별로 필요 없다. 신분증 안 보고도 경로 할인으로 두 사람 7천6백 원을 내란다.

그런데 좌석이 세 자리밖에 없고 그것도 따로따로랬다. 진주역이 옮겨 오고 첫길이라서 생소하다. 하지만, 옛날 서울 오르내리던 관록에다 60년대 통학하는 친구 집에 오갔던 경력이 있어 낯은 설어도 더듬거리지 않고 지하 통로를 거쳐 휑뎅그렁한 플랫폼에서 무궁화호 열차에 올랐다. 예전에는 긴 의자가 서로 마주 보게 배열됐었는데 진행 방향으로 둘씩이었다. 앉은 손님이 눈치를 채고 얼른 바꿔줘서 고맙다며 꾸벅했다. 일상 탈출의 타임머신을 타고 멋지게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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