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본래면목(本來面目)
진주성-본래면목(本來面目)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10.29 14:4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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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봉 대종사/진주 여래사 주지·전 진주사암연합회 회장
동봉 대종사/진주 여래사 주지·전 진주사암연합회 회장-본래면목(本來面目)

우리가 평소에 큰 잘못을 저지르고 사과를 할 때 “면목(面目)없습니다”라고 말한다. 면목은 불교에서 참모습을 일컫는 말로 본래면목(本來面目)에서 비롯된 용어이다.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면목이 서지 않는다”, “자네의 진면목을 보여줬네” 이렇게 사용되는 면목이란 체면, 남에게 드러낼 얼굴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불교에서는 면목을 다른 차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전의 본래면목(父母元生前本來面目)을 알면 깨달음을 얻는다고 했다. 부모에게 이 몸 받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면목이란 단순히 얼굴과 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간임을 이룩하게 하는 본래의 진수가 있었을 것이다. 태어나면서 부모님께 받은 육신은 숨 한 번 들이마시고 내 쉬지 못하면 바로 다음 생이다. 생(生)과 사(死)가 마치 옷 갈아입는 것과 같아서 ‘참나’라고 할 수 없다.

영원토록 변치 않는 참나를 찾아야 한다. 그 면목은 깨끗하고 모든 것이 비춰진다. 본래면목 속에는 거짓이 없다. 진실하여 거짓이 없으니 진실불허하다. 따라서 면목이란 모든 사람이 지니고 있는 불성(佛性)과 통한다. 불성은 많고 적음이 아니라 성질의 차이이다. 진면목도 그와 같아서 사람마다의 면목은 동일하지만, 그 면목을 지키고 사용하는 방법이 다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면목이 없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면목이 선다”고 한다. 이제부터 면목없는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

본래면목은 처음부터 부처와 중생이 하등의 차이도 없이 완전하게 동일한 모습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으로 본래청정자심(本來淸淨自心)을 의미하고, 자기의 생활 이전에 발생해 있는 그 모습인 본래심(本來心)을 의미하기도 한다. 불교의 선(禪)에서 추구하는 수행은 바로 이와 같은 자신의 본래면목을 파악하고 자각하는 행위이고, 선의 깨달음은 곧 본래면목의 터득이기도 하다. 보조국사 지눌 스님은 “텅 비어 있고 고요하며 신령스럽게 이해하는 마음이 바로 그대들의 본래면목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삼독(三毒), 즉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에 중독된 채 ‘가짜 나’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각계각층의 적지 않은 지도층 인사들이 제정신을 차려서 본래면목을 제대로 실천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가 극락정토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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