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공천제 폐지, 능사가 아니다
정당공천제 폐지, 능사가 아니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4.17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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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길선/진주시의원(새누리당)

지방선거에 대한 정당공천제 폐지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특히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은데, 그 동안 지방자치가 보여주었던 각종 문제점들을 싸잡아 정당공천의 문제로 몰아가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마치 정당공천제 폐지를 주장하면 개혁이고 그렇지 않으면 개혁을 반대하는 것으로 치부하고 있는데, 이러한 일방적인 논의로는 정당공천제가 폐지되더라도 우리의 지방자치는 결코 나아질 수 없다. 단적으로 지금의 지방자치의 문제점들은 정당공천제가 시행되지 않던 시절에도 있었던 문제들이었기 때문이다.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드는 대표적인 근거로는 공천 헌금 문제와 지방자치가 중앙정치에 예속된다는 것이 있다. 그러나 정당공천제가 없던 시절을 돌아보면 이 같은 근거가 매우 부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정당공천제가 없던 시절에도 정당은 내부공천과 당원단합대회 등 갖가지 수단을 동원하여 선거에 개입하였다. 오히려 정당공천제가 없던 시절에 암암리에 벌어졌던 정당의 개입은 지금보다 더 불법과 금품선거로 얼룩졌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또한 중앙정치의 예속 문제 역시 지금보다 더 심각했었는데, 여러 선거가 동시에 벌어지는 지방선거에서 개별적인 지역 이슈나 인물 이슈는 모조리 중앙 이슈에 묻혀버리기 때문이며 정당정치를 근간으로 하는 정치 현실에서 지방의회에 대한 정당의 영향력은 공천제와 관계없이 여전히 강력하기 때문이다
.
이처럼 정당공천제를 폐지한다고 해서 저절로 공천헌금 문제나 중앙정치 예속문제가 나아지지는 않지만 반대로 정당공천제가 폐지되면서 나타나게 될 부작용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먼저 정치신인에 대한 진입장벽이 생기는 문제다.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정당공천제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정치신인이 정당에 의해 등용되는 경우가 많다. 인물에 대한 검증이 불충분한 선거운동 기간 동안 정당 간판이 없는 신인이 기성 정치인의 인지도와 조직력을 이겨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정당공천제 폐지는 여성정치인에게도 무서운 진입장벽을 만들게 될 것이다. 유교와 가부장 문화가 남아있는 한국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이 무섭게 작용하는 곳이 바로 정치 영역이다. 실제로 기초의회에서의 여성비율은 2002년까지 2.2%밖에 되지 않았으나 정당공천제와 함께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서 2006년에 15%, 2010년엔 21.6%로 그나마 문이 열리게 되었다. 이처럼 여성 참여에 대한 뚜렷한 대안이나 대책 마련 없이 정당공천제가 졸속으로 폐지된다면 여성의 정치 참여가 급격하게 악화될 것은 불 보듯 훤한 상황이다.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불신이 깊다. 그래서 정치권은 매번 국민의 불신을 다른 탓으로 돌리거나 때로는 이러한 국민의 불신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한다. 지난 대선에서는 한 후보가 국회의원 수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을 하자 다른 후보들도 울며겨자먹기로 자신들도 그렇게 하겠다며 부화뇌동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물론 이 이야기는 대선이 끝나자마자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다.

정당공천제 논의 역시 마찬가지다. 마치 폐지만 하면 우리나라 정치의 수준이 올라갈 것처럼, 또 이것에 동의를 해야 개혁인 것처럼 포장을 하면서 정작 이에 대한 부작용이나 구체적인 대안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정당정치는 헌법에서도 보장하고 있는 민주정치의 핵심이다. 지금 국민들이 정치를 불신하고 있다면 문제 해결을 위해 쇄신을 하며 정면 돌파해야 하는 것이지 모든 문제를 정당공천제로 몰고 가는 것은 오히려 기성 정치인들이 개혁으로 자신을 포장하며 편하게 생명을 연장하려는 술수에 불과하다.

이 같이 졸속으로 추진하는 것은 또 다른 불소통·반민주주의 밖에 되지 않는다. 이제라도 공천제 폐지 이후에 벌어질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에 대한 대안 마련을 위한 논의를 보다 투명하게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진심으로 정치가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한 개혁을 하고자 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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