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늦더위와 텃밭 농사
진주성-늦더위와 텃밭 농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11.14 15:53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늦더위와 텃밭 농사

계절의 변화는 어김이 없다. 더위든 추위든 안 갈 듯하다가도 때가 되면 가고 다음 계절이 온다. 반소매 옷이 아직도 옷걸이 걸렸는데 겨울옷을 꺼내야 했다. 갑자기 일교차가 심해서 옷차림이 어정쩡했다. 아침저녁은 완연한 가을인데 한낮은 여름이었다. 기상청은 이변이라고 해서 그런가 했다.

하지만 괴이한 변고가 아니라는 것을 텃밭에 나가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이 채소를 기르는 텃밭이 코앞에 있다. 집사람은 동서의 부지런함 덕택으로 사계절 내내 제철 푸성귀를 내 것같이 뽑아다 먹는다. 가끔 일손을 거든다며 호미를 잡지만 일머리를 몰라서 땀만 흘린다.

“형님 좋아한다고 자색 무를 심었어요” 집사람은 동서의 말이 얼마나 고마웠던지 “즈거 숙모는 어찌 저리 말도 예쁘게 하는지…” 하며 잊을만하면 동서 자랑을 양념으로 끼얹는다. 그럴 만도 하다. 입맛 갖추어 푸지게 따다 먹는 온갖 푸성귀들. 그래서 우리 식탁에는 끼니때마다 채소 샐러드가 그들먹하다. 김장거리도 다 나온다. 무 배추 스무남은 포기면 충분하지만, 마늘과 고추도 텃밭에서 나온다.

농작물은 양이 많고 적음과는 상관없이 일손 잡히기는 마찬가지다. 동생 내외는 농사꾼도 아니면서 재미 삼아 쪽파 심고 상추 심고 하다가 해를 거듭할수록 그 종류를 늘여가며 텃밭 전문가가 되었다. 이름도 못 들어 본 별별 채소도 있다. 그러다 보니 날씨 변화에도 민감하고 언제 뭘 심어야 하는지 절기도 웬만큼은 꿰고 있다.

사람이든 작물이든 때가 있다. 시기를 놓치면 낭패다. 그런데 올해는 뭐가 잘못되었는지 배추 모종을 다시 심었다. 처서 무렵에 심었던 배추가 데친 듯이 시들어서 다시 심느라 한참 늦었다. 남들 밭에는 노랗게 속잎이 차는데 겨우 쌈 배추 정도였다. 올해 김장 농사는 틀렸다고 생각했는데 늦가을 햇볕이 예사롭지 않았다. 서두르라는 재촉인 줄은 몰랐다. 배추는 하루가 다르게 몸피를 키우더니 속잎을 노랗게 채웠다. 허리를 동여매 주었더니 절구통처럼 옹골차게 몸매를 갖추었다. 가을 더위, 이유 있는 기상 이변이었다. 늦여름의 가뭄으로 성장이 더뎠던 과일과 채소들까지 서두르라는 또 한 번의 기회였다.

늦가을의 이상 고온, 자연이 베푼 이유 있는 이변이었다. 이제 서리가 내린다. 찬 바람이 불어올 날이 머지않았다. 기회인 줄 알면서도 받아들일 여건조차 갖추지 못한 우리들의 아픈 삶에도 기회의 이변이 자주 오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