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논두렁 축구대회
도민칼럼-논두렁 축구대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11.29 17:10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희지/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
신희지/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논두렁 축구대회

촌이나 도시 변두리에서 6, 70년대 유소년기를 보낸 이들에게는 익숙한 놀이풍경이 있다. 벼를 벤 논이나 수확을 마친 밭에서 짚으로 된 공이라든가 돼지 오줌보로 만든 공을 가지고 뛰놀던 모습이다. 나처럼 도시 변두리에서 나고 자라 그 풍경이 낯선 이들에게도 재미난 대회가 우리 하동군 악양면에서 열렸다. 2019년에 처음 시작하고 코로나로 인하여 못하다가 올해 세 번째 대회라고 한다. 협동조합공정여행놀루와에서 기획을 했는데 우리 지리산문화예술학교도 함께 했다.

추억을 소환하는 대회답게 재미가 먼저라고 알려왔다. 팀명을 딱딱하게 짓기보다 뭐로 할까 고민하다, ‘지문교 오합지졸’로 정하고 급히 선수단을 꾸렸다. 말 그대로 오합지졸이었다. 우리처럼 이렇게 만들어진 남성팀의 ‘개발새발’, ‘미풍양보FC’, ‘레알마시드라’ 여성팀의 ‘우승하긴글라스’, ‘룰루랄라’ 등 재미난 이름을 딴 선수단이 나왔다. 재미로 나왔는데 경기를 하다 보니 당연히 욕심이 나고 급히 선수단을 꾸리느라 그날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팀웍이 붙기 시작했다.

가로 20미터 세로 30미터의 축구장에서 전반 10분 후반 10분을 뛰었다. 울퉁불퉁한 논바닥에다 단단한 볏짚공을 차는 일이 장난 아니었다. 엎어지고 헛발질이 나가고 응원단의 꽹과리 소리와 고성이 난무하고 시끌벅적 큰잔치가 벌어졌다. 다행인 것은 논이다 보니 넘어져도 큰 부상은 없었다. 재미를 우선으로 한 것이 신의 한수였다. 지고 나서도 이렇게 유쾌할 줄이야!

한겨울 촌은 농한기(農閑期)에 행한기(行閑期)이기도 하다. 관광업도 겨울이면 잠시 멈춤이다. 이제 농촌에 농사만으로 먹고사는 이들이 많지 않다. 더구나 하동은 관광이 주된 상품으로 자리한다. 아직은 지역민들이 대부분이지만 이번 대회를 나가면서 주변에 알리다 보니 경기도 이천에서도 오겠다고 하고 부산에서도 들썩이는데 이러다 진짜 선수들이 올까봐 겁난다.

전직 축구선수나 조기축구회 5년 이상 나가는 사람은 출전금지조항을 만든다든가 연습 금지여야 한다고 선수규약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지리산문화예술학교는 꽹과리중구난방응원단을 꾸려 나갔는데 얼마나 시끄럽게 쳤는지 선수들 교란에 한몫을 해서 준우승을 차지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내년에는 응원상도 주면 참 좋겠다.

‘논두렁 축구대회’에 참여하면서 세대 간 이런 소통이 얼마나 정겨운지 새삼 느꼈다. 한 번도 논두렁축구를 해 본 적이 없는 아이들, 청년들, 여성들이 볏짚공을 가지고 놀았다. 스포츠 경기만큼 사람들을 단합하게 하는 것이 없다. 점점 더 양극으로 갈라져 시시비비를 따지지도 않고 내 편이면 무조건 옳고 상대편이면 무조건 그르다는 게 일부 목소리 큰 사람들 심리다. 이쪽에서는 저쪽이 조장했다 하고 저쪽에서는 이쪽이 더 문제라고 니탓내탓만 횡횡한다. 젊은이들은 노인들을 욕하고 노인들은 젊은이들을 야단친다.

양비론(兩非論)도 문제지만 양극(兩極)론은 더 문제다. 2002년 월드컵 때 우리가 4강에 진출한 것보다 더 신나고 가슴 벅찼던 건 시청 앞 광장에서 한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쳤던 붉은악마였다. 레드컴플렉스도 그때 깨지지 않았나 싶다. 70년대 학교 다니는 내내 공산당은 붉은색으로 칠해야 했던 그래서 붉은색은 빨갱이라는 흉악한 세뇌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내 개인적으로는 일어났다. 이제 공산주의는 사라졌고 빨갱이는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말일뿐이다. 그런 객쩍은 소리 할 시간에 겨울이라고 움츠리지 말고 살살 몸을 움직여보면 정신도 맑아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겨울, 논바닥도 다지고 집에서 게임만 하고 있을 아이들도 불러내고 어른들은 지난 추억을 소환하고 젊은 친구들은 새로운 놀이에 즐거워하는 ‘논두렁 축구대회’ 앞으로의 기운이 심상찮다. 우리 학교 선수들, 준우승 상금으로 받은 이십만원을 가지고 제주도로 전지훈련이라도 가야하는 것 아니냐고 깔깔거리며 이야기하는 중이다. 웃음이 없는, 유머가 없는 삶은 그저 삶은 계란일 뿐이다. 세상사가 어떻게 돌아가든 내 안의 유머로 자가 충전하시기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