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사라진 것들, 사라질 것들
아침을 열며-사라진 것들, 사라질 것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11.30 16:4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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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사라진 것들, 사라질 것들

이번엔 ‘상실’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게 대단히 중요한 철학적 주제라는 어떤 영감이 퍼뜩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혹시...’ 하는 생각이 들어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다. 역시. 아니나 다를까. 그럼 그렇지. 이걸 주제로 한 글들이 넘치고 넘쳤다. 세상엔 대단한 사람들이 엄청 많다는 사실을 잠시 깜빡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잘 쓴 글들도 눈에 들어온다. 감탄과 더불어 좀 막막해졌다. 이걸 꼭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할 수 없다. 모든 걸 다 뒤져보고 같은 걸 일일이 피해서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냥 모른 척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밖에 없다.

사실 계기는, 어느 한 신문에서 ‘한국은 끝났다’는 기사를 우연히 접한 것이다. 그 글도 일본의 한 기사를 배경에 두고 있었다. 근래 한국이 ‘중국은 끝났다’고 비아냥거렸는데 이제 그렇게 남 말 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도 끝났다’는 것이다. 얄밉지만 반박할 여지도 없다. 핵심은 인구감소로 생산인구가 줄고 있어 지금까지와 같은 경제성장은 앞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내리막길을 걷다가 수십 년 후에는 경제강국 리스트에서 아예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도 내놓았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상식 수준에서도 충분히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한국은 그렇게 세계의 선두 그룹에서 사라질 것이다. G9? 턱도 없다.

생각해보면 사라질 것은 경제성장뿐만이 아니다.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지는 중인 것도 부지기수다. 너무 많아 이렇게 짧은 글에서 거론하는 것 자체가 애당초 무리다. 호롱불, 고무신, 전보...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인정, 교양, 덕성... 그런 건 말할 것도 없고 정의, 애국, 협동... 그런 것도 다 사라졌다. 좀 과장하자면 ‘인간’도 사라졌고, ‘조국’도 사라졌다. 문학-철학-사학 같은 전통 인문학도 목하 소멸 중이다. 물론 지식으로서는 살아남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사람’의 일부로서 혈관에 흐를지는 심히 의심스럽다.

물론 상실은 애당초 우리네 인간의 본질에 속한다. 누군가의 지적처럼 ‘직업, 동료, 배우자, 재산, 건강, 자녀...’ 뿐만 아니라 ‘명예, 지위, 희망, 사랑’ 같은 것도 다 상실의 대상이다. 그건 아마 ‘국가’의 본질에도 속하는 바일 것이다.

우리는 1945년 일제로부터의 해방 이후 엄청난 노력으로 엄청난 성과를 이룩했다.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라는 칭송도 받았다. 최근의 한 보도에 의하면 우리의 경제력은 대략 세계 10위, 군사력은 세계 6위, 그리고 종합국력은 프랑스와 일본을 제친 세계 6위라고도 한다.(미국 ) 혹은 9위다.(한반도선진화재단) 눈부신 성과다. 나는 여러 기회에 이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세계 1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황당하지만, ‘질적인 고급국가’로 승부를 걸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삼성이나 BTS나 기타 한류, 스포츠 등을 보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라고 주장의 근거도 제시했다. 그러나 이런 것들조차도 과연 얼마나 오래 그 영광을 지속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붕괴로 이어질 균열이 감지된다. 인구감소도 사실 큰 문제지만 그게 결정적인 것도 아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국민 대부분의 과도한 이기적 욕망(‘나만’주의)과 정치의 무능이다. 특히 ‘그들’의 고질적인 패거리주의다. 그들이 과연 ‘한국은 끝났다’는 저 일본의 조롱에 대해 관심이나 있는지, 끝나지 않기 위한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는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걱정이 안 될 수 없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세계 초강대국들(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에 둘러싸여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우리의 적국이었다. 지금도 크게 다를 바 없다. 미국과 일본이 우방이라고는 하나 일본은 우리의 국권을 찬탈한 침략의 역사가 있다. 또다시 그러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역사는 필연적으로 반복될 것이다. 미국은 과연 믿을 수 있을까? 역사의 시계를 조금만 돌려보라. 중요한 순간에 미국은 일본을 편들었지 우리나라를 편들지 않았다. 각오해둬야 한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한국은 언제 어떻게 추락하고 사라질지 모른다. 망국의 숫자 1910년은 언제나 우리의 앞에 놓인 가능성이다. 이 나라 정치집단에 대해, 그리고 안일한 국민의식에 대해 철학자로서 대오각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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