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유언이나 묘비명이 남긴 교훈(40)
칼럼-유언이나 묘비명이 남긴 교훈(40)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12.04 17:12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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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유언이나 묘비명이 남긴 교훈(40)

▶올바른 통치와 회교 포교에 헌신한 무굴제국의 5·6·7·8대 황제 아우랑제브(1618~1707·89세, 재위:1658~1707·49년):황제는 임종이 다가오자 얼굴에 회색을 띄우며 행복한 표정으로 죽음을 맞이하면서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아무도 자신의 영혼이 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겠지만 나는 나의 것이 나가는 것을 알고 있다(No one has see the departure of his own soul, but I know mine is departing).

그가 통치했던 영토는 약 4백만 ㎢로 한반도의 2천 배나 되었다.

▶5세 때 왕위에 올라 무려 72년 동안 즉위했던 프랑스의 왕 루이 14세(1638~1715·77세, 재위 기간:1643~1715·72년)는 호화로운 베르사유궁의 주인으로 유명하다. 이 대단한 군주가 살았던 베르사유궁은 유럽에서 가장 웅장하고 호화로운 궁전으로, 부(富)의 상징이자 정치권력의 중심지였다. 방들에는 사치스러운 가구들이 놓였고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빛났으며, 정교하게 설계된 정원은 1400개의 분수와 조각상으로 꾸며졌다. 거울에 방에는 보석과 우아한 의복으로 치장한 귀족들이 모여 무도회와 음악회, 발레 공연을 즐겼다.

보이는 게 다일까? 베르사유의 화려한 겉모습 뒤에는 끔찍한 진실이 숨겨져 있었다. 그곳은 도처에서 풍기는 분뇨의 악취로 숨쉬기조차 힘든 지옥이었다. 왕족·귀족들·관리·시종과 하인 등 약 4000명이 모여 살았던 궁에 화장실은 단 아홉 개뿐이었다. 사람들은 계단·복도·벽난로·정원 가리지 않고 아무데서나 배변을 했다. 화장실의 배수관 설비 또한 열악한 탓에, 거주자들의 대소변량을 감당하지 못했다. 종종 오물이 넘쳐흘러 벽과 바닥을 통해 옆방으로 스며들었고 값비싼 옷과 가구를 더럽혔다. 한편, 손 씻기가 철저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대장균이 조리실의 음식을 오염시켰고, 궁 사람들은 자주 촌충에 감염되었다.

오늘날의 기준에서 보면, 루이 14세는 정말 믿기 힘든 불결함 속에서 살았다. 왕은 평생 두세 번 목욕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따뜻한 물로 목욕하면 모공이 열려 질병이 몸으로 들어온다고 믿고 목욕을 자주 하지 않았다. 목욕을 안 하고 머리를 자주 감지 않으니 의복과 머리카락에 이와 벼룩이 들끓었다. 칫솔과 치약이 없어 허브즙을 적신 천으로 치아를 문질러 구취를 없애려고 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상류층의 위생 관리가 이럴진대 평민들은 오죽했을까? 현대 문명의 가장 큰 수혜 중 하나는 위생의 발전이다. 현재 전 세계 인구 79억 명 중 55% 이상의 사람들이 상하수도 인프라가 갖춰진 도시에서 살고 있고, 샴푸·비누·세제를 사용해 청소하고 세탁하고 목욕한다.

왕이라 할지라도 지금 우리가 누리는 문명의 쾌적함, 의학의 혜택을 결코 향유하지 못했다. 백신도 없던 시대라, 루이 14세와 엘리자베스 1세는 천연두로 심하게 얽은 얼굴로 평생을 살아야 했다. 루이 14세는 단 것을 달고 산 탓에 결국 한 개를 제외한 모든 이(齒)를 뽑아냈는데, 이 과정에서 치료가 잘못돼 입천장에 구멍과 농양이 생겼다. 지금은 보통 사람도 수준 높은 치과 치료와 임플란트 시술을 받아 양호한 구강 상태를 유지하지 않는가. 왕의 부실한 구강은 만성 위염과 장염·설사·치루로 이어졌고, 마취제나 항생제도 없이 입안을 불로 지지고 항문 부근의 생살을 메스로 찢는 고통을 견뎌야 했다. 특권계층인 옛날 왕족, 귀족의 삶과 오늘날의 평범한 사람의 삶 중 어느 삶이 더 행복할까?

‘태양의 왕’이라고도 불리었던 그의 치정시대를 문학과 예술의 황금시대로 중앙집권의 경제·법률·군사에 뿌리를 둔 절대군주제를 확립하고 프랑스 번영의 터전을 마련했다. ‘화려함의 극치’라 하는 ‘베르사유 궁전’은 이때 건립했다. 그러나 이 명군(名君)도 만년의 폭정과 신교(新敎) 박해 때문에 혐오를 받았다.

예전에는 왕이나 소수 귀족만 고기와 술을 맘껏 먹었으므로 거기서 나오는 대사 물질인 요산(尿酸)이 과도하게 축적되어 발생 된 병이 통풍(痛風)인데 이 병은 바람만 불어도 아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병을 ‘왕의 병’으로 불렀다. 요즘은 누구나 왕처럼 먹어서인지, 해마다 통풍환자가 늘면서 2021년 49만여 명이 통풍환자라는 통계치가 있다. 그는 죽을 때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더 힘들구나!”라는 유언을 남겼다. 혹자들은 이 사람과 ‘반대로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힘들다’라고들 하기도 한다.

역시 흐르지 않는 물은 썩기 마련이고 오래된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라는 교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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