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국회의원께 상서문
진주성-국회의원께 상서문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12.13 17:3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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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국회의원께 상서문

진주성 촉석루가 고려 고종 28년(서기 1241년) 창건했고 7차례 중건‧보수를 거쳤는데 현재 국보도 아니고 보물도 아니고 명승도 아니고 중요민속자료도 아니고 말하자면 7등급에 해당되는 문화재를 위한 자료에 불과했고 2020년 6월 겨우 지방 유형문화재로 한 등급 올랐습니다.

6.25 한국전쟁 때 목재 부문이 상당 부문 소실되었다고 하지만 석문과 바닥 돌은 살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1959년 진주를 방문한 대통령께 탄원해 국비(國費)가 하달되었으나 밀양과 함양으로 절반씩 나누다 보니 건립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초‧중‧고등학생들을 동원해 성금을 모으기 시작했고 기업체 대표(구인회, 추겸호)가 100만원 70만원을 기부함으로 1960년에 준공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부에서 국비를 하달하였기 때문에 공문을 보내고 간섭하게 되는데 원형대로 복구하라고 지시하게 됩니다. 전국 최고 문화재 고택영, 강수영, 임천, 김천석 등을 초빙해 오대산에서 목재를 취재하고 군인들과 운크라 등을 동원해 운반할 때 도로변 초가집 수십여 채를 허물고 진주까지 운반할 수 있었습니다.

진주 교육감 강용성, 박세제 원장, 이정희 시청 과장 등의 지도를 받아 복원할 때 1930년대 설계도를 보고 그대로 복원했기 때문에 현재 촉석루와 설계도를 비교해 실측 확인해 보면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형대로 복원한 촉석루를 사실 확인도 없이 일제 때 보물이었고, 1948년 국보 276호였는데 국보 자리에서 취소한 것은 아주 잘못된 짓입니다. 남대문(숭례문)은 목재 부문이 98% 소실되었으나 상징성 때문에 국보를 유지한다고 문화재 위원장 안모 교수가 인터뷰한 사실을 우리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촉석루와 의암과 의기사를 합하여 명승으로 지정되어야 하지만 전국 134곳 명승에도 들지 못하니 통탄스런 일입니다. 일제강점기에도 일제 당국은 명승으로 인정해 엽서를 만들어 전국, 전 세계에 배포, 판매했었는데 경북지역은 봉수대 6곳을 국가문화재 사적(史蹟)으로 지정했는데 경남은 사천, 남해, 고성, 진주, 통영, 마산, 거제, 창원 봉수대는 지방 문화재입니다.

문화재 위원 99명 중 경북 14명, 충청 23명, 호남 12명, 강원 6명인데 경남은 17년간 한명도 없습니다. 남원 광한루는 보물 겸 명승이고 담양 소쇄원은 기념물 겸 명승입니다. 임진왜란 3대첩의 공신들을 모신 창렬사가 문화재의 최하급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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