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억새가 갈대로 되는 시대
도민칼럼-억새가 갈대로 되는 시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12.13 17:3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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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김기원/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억새가 갈대로 되는 시대

찬이슬이 반가운 계절에 오싹한 냉기에 주눅이 들만큼 겨울로 재촉하는 기온이 날마다 추워진다. 어느 식물보다 헌손한 억새가 자기 자리를 자랑하는 만산 언덕고개 사이마다 떼 지어 이룩한 억새밭은 공터 없이 꼭 이룩하여 다른 식물이 땅을 넓히지 못하게 거리를 좁히며 추위를 이기는 당당한 정신에 이어진 억새꽃과 눈발이 함께 만개한다.

억새는 지역에 따라 모양 형태와 꽃 모양새가 다르다. 어떤 억새는 신방 꽃차례 이루어 이삭이 뼉뼉히 등 다양하나 일반적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듯하게 보인다. 억새꽃은 흰색이고 은은한 온빛을 보이지만 온도, 지역 따라 색깔이 다르고 당당한 모습도 다르다, 앙증스레 피기도 하고 긴 꽃자루 이삭을 이루고. 꽃 색깔도 흔하지 않은 자홍색, 은근한 흰색이 더욱 눈길을 당긴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언덕에 죽을 운명이 지나는 길손의 눈에 띄어 이처럼 번식되어 삶을 답하니 어찌 흔하고 하찮은 억새를 소외되게 취급하기보다 관심을 높여야 하겠다. 그래서 근처 가까이 자생하는 억새보다 깊은 억새가 더 멋있어 보일 만큼 분장이 잘된다. 늘 궁금했던 억새를 이번 초가을에 아주 가까이하여 보았으나 더욱 흥미를 준다.

쌀쌀한 추위에 다른 꽃들이 시들어 자취를 감추고 낙엽 속에 파묻히나 윗부분은 말라 죽고 뿌리만 남으니 설렁한 빈자리를 남기는데 겨울의 처량한 모습은 내 마음처럼 꽉 차지 못하여 더 분주한다. 억새는 겨울 달밤에 각종 모형을 이루고 앞으로 한 달 더 넉넉히 곱게 채워 주리니, 고맙다 군자같은 억새야!

그나저나 다음 주부터 기온이 뚝 떨어진다니 억새밭을 가득히 채우 기를 했으나 모진 바람에 억새의 방파가 없으면 월동준비가 은근히 걱정된다. 억새밭을 찾아와서 보고 즐긴 값을 톡톡히 치러야 하는 당연한 수속의 절차이니 어찌 삶은 내색으로 거부할까마는 실보다 내 마음에 덕이 많았으니 은근히 구경한 것만큼 부담스럽다. 살아있는 생물은 주인이 베푼 정성만큼 친근한 벗이 되기보다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어 준 은혜를 배신하기 예사인 인간 세상. 그래서 옛 어른들이 이르시기를 머리 검은 짐승은 함부로 거두는 게 아니라고 말했고, 흰 머리 짐승은 용맹성 거두어 주라 했다. 세상에 제일 무서운 건 범이 아니고 사람으로 요즘 사람은 색깔에 관계 없이 더 무서워졌다.

가을 이슬을 매혹적인 은빛 물결로 일렁이는 억새를 주제로 하는 축제는 합천 황매산 억새, 창녕 화왕산 억새, 부산 승학산 억새, 보령, 홍성, 정선의 민등산 억새 등이 매년 개최되고 억새 차를 개발하여 저마다 멋을 장식한 향기와 맛이 다양하다.

억새 차에 익어가는 늦가을 10월. 11월 중순은 곳곳마다 축제가 풍년이고 축제위원회란 플랜카드가 도시 거리를 꼭 메우는데 마지막 수확기에 쫓기는 농촌마다 짧아지는 계절 따라 할 일은 많아 바쁘고 분주하다. 그래서 늦은 가을 밤을 걸어야 할 때가 많아 은빛 물결로 일렁이는 억새가 밤길을 안내한다. 억새 향기에 감성의 깊이가 깊어지고 굽이굽이 굽이쳐 뻗어나 있는 빼어난 주변의 기암괴석과 그 사이에 고고하게 휘어져 나온 소나무. 눈주목이 수놓고 있었으나 우리의 자연을 제대로 읽지 못하니 늘 불만이다.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 저마다 다르게 사는 세상살이가 특징이다.

어느 분은 다르게 꾸미고 어느 분은 부자로 살고 어느 분은 돌멩이로 산다. 남의 물을 도둑질하여 평생 잘산다는 자체가 오늘의 우리들 현실이다. 들에 억새로 심었는데 갈대가 성장하였다. 억새와 갈대는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아무도 잘못 심었다고 지적하는 사람 없다. 또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조차 없다. 떼거리를 이용하여 갈대를 억새라 우기며 결국 떼거리 다수결 표를 얻은 갈대를 억새라고 호칭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스스로가 불행하다. 언제까지 거짓과 무능한 떼거리 집단에 얽매어야 할까. 심는 방법은 다르지만 억새밭에 억새 나고 갈대밭에 갈대 나는 것이 정법인 세상에 살고 싶다. 왜 세상이 이꼴이요, 억새 차를 마시고 들꽃 향기를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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