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한국문학의 새로운 희망 후문학파
도민칼럼-한국문학의 새로운 희망 후문학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12.18 17:3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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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옥/창신대학교 명예교수·문덕수문학관 관장
이상옥/창신대학교 명예교수·문덕수문학관 관장-한국문학의 새로운 희망 후문학파

개화기 이후 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문학은 문화의 중심에서 시대정신을 이끌어 왔다. 문인들은 거대한 이데올로기 장벽에 저항하면서 때로 권력의 압제에 스스로 좌절하거나 훼절하기도 했지만 문사로서의 기개와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육당 최남선은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며, 근대 자유시로 시의 물꼬를 바꾸고 독립선언문도 기초하며 민족대표 33인의 하나로 독립운동을 하다 2년 6개월형을 선고받고 투옥되기도 했다. ‘해에게서 소년에게’(1908년 11월 ‘소년’ 창간호에 발표)만 봐도, 봉건시대를 넘어 서구 및 일본의 선진 문화 수용해서 활기찬 새 시대를 열어가고자 하는 열의와 함께 새로운 시대정신으로서의 개화 계몽의 전위에 선 문사로서의 면모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굳이 이광수까지 세세하게 거론할 것도 없다.

최남선과 이광수가 당대 최고의 지식인으로 문학을 통해 개화 계몽을 하고자 했지만 둘은 한결같이 일제의 회유와 압박으로 훼절하는 역사의 오점을 남겼다. 두 천재의 비극은 불온한 시대에 태어난 피할 수 없는 숙명이 아니었겠는가.

문자문화 시대에서 영상문화 시대로 패러다임의 대전환과 아울러 현금의 문학은 너무 왜소해져버렸다. 더 이상 시대 정신의 중심부에 문인의 자리는 없다. 시대 중심에 자리해야 영욕도 있을 터이다.

화제를 돌려, 며칠 전 진주 칠암동 어느 커피숍에서 2023년 겨울호 ‘선수필’ 신인상으로 등단한 공성원 수필가와 강희근 교수, 박우담 시인과 함께 정담을 나눴다. 공성원 수필가 등단 축하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강희근 교수께서 덕담으로 후문학파를 얘기를 꺼내셨다. 후문학파는 처음 듣는 용어로 우스갯소리인가 했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고 보니, 무릎을 치게 만드는, 우리 시대 문단 현실을 잘 담아낸 신조어였다.

강희근 교수는 ‘후문학파와 노령시학(1)’에서 후문학파라는 신조어를 만든 경위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강교수는 정년 퇴임을 하고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직을 맡게 되면서 ‘편집인’으로 ‘월간문학’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고 또한 ‘문학표절문제연구소장’의 주요한 업무도 맡으면서 문인협회 내에 계층 간 갈등이 연령대에서 엄존하고 있음을 직시하게 됐다. 당시 한국문인협회 회원들은 고령층 65세 이상이 거의 65%를 넘고 있었다.

문인 인구의 고령화는 퇴직 후에 등단하는 추세에 기인하는 것인데, 고령 문인층과 문단의 전통 등단 시기인 20대 30대에 나온 소장층과는 거리감이 있고 심지어는 서로 외면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강교수는 인생을 문학과 함께 해온 문인들, 주로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에 등단한 ‘선문학파’ 못지않게 인생 경험을 먼저 하고 뒤에 문학을 시작한, 곧 정년 퇴임 이후 등단한 ‘후문학파’도 우리 문단의 소중한 자산임을 깨우치게 한 것이다.

정호웅 교수도 경제부총리를 지낸 김준성의 10주기 기념 소설집에 붙인 해설 비평에서 “강희근 시인에 의하면 소설가 김준성은 후문학파에 속한다”라고 김준성 소설가를 대표적인 후문학파로 거론하기도 했다.

육당이나 춘원 같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 개화 계몽을 효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문학에 투신한 것 같은 한국문학의 호시절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오늘의 100세 시대에, 재능 있는 인재들이 선문학파로 문단에 다수 진입해주지 않는 것을 너무 안타까워하기보다는 차라리 후문학파의 문단 진입을 더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환영해야 할 것 같다. 젊을 때는 치열하게 생활 현장에 투신하고 정년 퇴임 이후 인생 경험을 문학으로 무게 있게 담아내는 한국문학의 새 지평으로서의 리얼리즘문학을 후문학파들에게 기대해 보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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