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친구의 충언
진주성-친구의 충언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1.11 16:3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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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동섭/진주노인대학장
심동섭/진주노인대학장-친구의 충언

나이 팔심이 다 된 나이에 노인대학에 있는 나에게 부산에 사는 죽마고우 친구는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내왔다. 행여 욕심내고 미련을 버리지 못할까 노심초사였으리라. 구름과 고향, 강과 바다, 인생 행로에 대해 김삿갓처럼 해탈하여 순리대로 살라는 교훈인가 싶었다.

“가는 구름과 흐르는 물은 애초에 정해진 바탕이 없다.” 일찍이 소동파(蘇東坡)는 자신의 시에서 “행운유수(行雲流水), 초무정질(初無定質).”이라 하였다. 누구도 바다의 고향을 묻지 않는다. 바다의 고향은 강이었고 개천이었고 계곡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바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황지우 시인은 말했다. “길은 가면 뒤에 있다.” 돌아보면 누구나 자신의 ‘지나온 길’이 보이지만, 앞을 보고 걸을 때 ‘가야 했던 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 정처 없는 길이었다. 인생에 정해진 길이란 없다. 오직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일 뿐이다. 방법은 언제나 내 안에서 찾아야만 한다.

비록 경로를 이탈한 변방의 아웃 사이더에 불과할지라도 무의미한 인생이란 없다. 세상의 경로란 것도 세속이 만들어 낸 관습과 문화일 뿐, 모든 인생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고정불변의 정언명령은 아니다. 모든 꽃이 반드시 봄에 피는 것은 아니다. 여름에도 피고 가을에도 피며 심지어는 겨울이 돼서야 피는 꽃도 있다. 사과나무와 떡갈나무가 자라는 속도가 다르듯 저마다 인생의 봄은 이렇게 서로 다른 법이다.

과거를 돌아보지 말자. 어차피 세월은 흘러갔고 구름은 소멸할 뿐이다. 바다에게 고향이 의미가 없는 것처럼~,새는 날면서 뒤돌아보지 않는 것처럼~, 나그네는 갈 길이 남아 있을 때 행복한 법이다.

가지 않은 길이란 갈 수 없었던 길이 아니라 가기가 두려워 회피한 길이다. 가지 못했던 길에 대한 후회는 쉬운 길을 선택했던 자의 넋두리에 불과하다. 가지 못한 길을 뒤돌아보는 자보다 가지 않은 길을 걷는 자의 뒷모습이 더 아름답다. 그것이 길을 ‘아는 자’와 ‘걷는 자’의 차이이다.

누구나 인생을 순풍에 돛단 듯 순조롭게 살고 싶지만, 돌아보면 파란만장한 삶이 훨씬 더 아름답다. 어쩌면 행복이란 목적지에 있지 않고 목적지를 가는 여정에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 나는 그 여정의 한 길목에 서 있다.

루쉰이 말했다. “나는 생각한다. 희망이란 것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도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필자가 가고 있는 길,

그 끝이 어디일지 모르지만 순리대로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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