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디카시 광장-맞아, 겨울 다음은 봄이지
수요 디카시 광장-맞아, 겨울 다음은 봄이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1.16 12:37
  • 1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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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구수영/시인
디카시_이종훈/시인

맞아, 겨울 다음은 봄이지

 

 


하던 일 말아먹고, 할머니 아버지
아들 딸 그리고 아내와 나,
단칸방냉방에서 눈물로 밥을 먹었습니다

13년 뒤, 조그만 집을 사서 이사를 했습니다
그날 저녁도 온 가족이 눈물로 밥을 먹었습니다.

_이종훈



<해설>
제 아버지는 혼자 고향을 멀리 떠나 살림을 일궜지요. 낯선 곳 낯선 사람들 틈에서 고생하여 마련한 낡고 작은집 계절이 바뀔 때마다 미닫이문에 창호지를 바르며 고향 집 이야기를 했지요. 언젠가는 돌아가 산 아래 밭에다 단감나무며 사과나무를 심을 거라고 하셨지요.

가진 것이라고는 시멘트 블록으로 집과 고향에 있는 작은 묵정밭이 아버지의 든든한 배경이었어요. 그 밭에서 호박잎 하나 얻어먹은 적 없어도 그곳은 돌아가고 싶은 아버지의 집이었지요. 하지만 아버지는 그곳으로 못 돌아갔지요 아니 안 돌아갔습니다.

당신이 지금 사는 동네에서 제일 작고 초라한 집이었지만 그 집을 중심으로 가족이 늘어나고 살아온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던 겁니다. 돌아가고 싶은 그리운 고향보다는 작은 집이지만 스스로 일궈낸 집, 가족의 눈물과 웃음으로 뿌리를 내린 집, 그것이 아버지의 진짜 집이었지요.

디카시 ‘맞아, 겨울 다음은 봄이지’를 읽으며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저 따스한 불빛을 만들고 지키기 위해 애썼을 부모님 생각이 납니다. 지상의 집 한 칸 마련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마다하지 않았을 서러운 시간, 이 이야기는 어느 집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임을 알기 때문이지요.

이기철 시인의 시 ‘네 켤레의 신발’ 첫 연을 읽어보겠습니다.

“오늘 저 나직한 지붕 아래서/코와 눈매가 닮은 식구들이 모여 앉아 저녁을 먹는 시간은 얼마나 따뜻한가”

포착 시에 담긴 작은집 불빛 아래에도 코와 눈매가 닮은 식구들이 모여 눈물로 밥을 먹고 있습니다. 혹독하게 길었던 겨울을 보내고 다시 맞이한 봄, 풍성하지는 않지만 따뜻한 봄을 만든 가족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들려옵니다. “맞아, 겨울 다음은 봄이야.” 하지만 그냥 얻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지요. 집은 네모난 건축물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와 숨소리가 베어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라는 것을…


글_구수영 시인

 

 

이종훈 시인
* 시사모, 한국디카시학회 회원
* 인천거주
* 동인지 ‘시를 꿈꾸다’ 외 다수공저
 

 

 

 

구수영 시인
* 2018 계간 ‘시와편견’ 등단
* 시집 ‘나무는 하느님이다’, ‘흙의 연대기’ 출간
* 시집 ‘붉은 하늘’ 외 공저
* ‘제1회 한국자유문학상’, ‘시와편견 올해의 작품상’ 등 수상
* 시를사랑하는 사람들 전국모임, 한국디카시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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