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유언이나 묘비명이 남긴 교훈(47)
칼럼-유언이나 묘비명이 남긴 교훈(47)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1.22 14:13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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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유언이나 묘비명이 남긴 교훈(47)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10번째 군주 알렉산더 Ⅰ세(1777~1825·48세): 사랑하는 딸의 죽음 때문에 마음에 변동이 일어나 신비주의자가 된 황제는 나폴레옹과 맞먹는 명군이기도 했다. 죽을 때 “날씨가 좋구나!”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는 아마도 죽음을 순리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범인(凡人)이 아니었다.

▶미국 제2대 대통령 아담스 존(1735~1826·91세.재임:1797~1801·4년): 그는 죽음이 임박해오자 유망한 후계자(토머스 제퍼슨)에게 미국을 맡긴 것으로 생각하고 “토머스 제퍼슨이 아직 살았으니…”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는 2시간 전에 제퍼슨이 죽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지도자적인 정치가 두 사람이 동시에 죽는다는 것은 미국 역사상 특기할 만한 일이었다. 그날이 바로 미국이 독립한 지 꼭 5십 년 되는 해 7월 4일이었다. 이 두 사람은 전생에 미국과 인연이 깊었던 사람이 아닌가 한다.

▶미국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토마스 제퍼슨(1743~1826·83세, 재임:1801~1809·8년): 버지니아 농장주의 아들이었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여 변호사가 되었다. 32세 때 버지니아 대표로 제1,2차 대륙회의에 참가했고, 33세 때 대륙회의의 독립선언문 기초위원으로 선발되었다. 36세 때 버지니아 주지사가 되었으며 프랑스 대사·국무장관을 거쳐 53세 때 부통령, 57세 때 대통령이 되었다. 60세 때인 1803년 나폴레옹 1세로부터 프랑스령 루이지애나 땅 214만 ㎢를 당시로서는 거금인 1500만 달러(2020년 현재 약 2650억 원)를 들여 사들여서 미국 영토를 거의 배가(倍加)시켰다. 1㎢당 단돈 7달러에 불과했다. 미국 독립선언문을 기초했으며 미국 제3대 대통령을 지냈다. 그는 죽을 때 “오, 영광스러운 7월 4일입니다. 위대한 날이에요. 좋은 날이에요. 여러분께도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가 죽은 날은 그가 미국의 독립선언문을 작성했던 미국의 독립기념일(7월 4일)이었다. 66세 때인 1809년 제임스 매디슨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줬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내셔널 몰(National Mall:미국 역사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장소)에는 위대한 미국인들을 기리는 현대판 신전(神殿)들이 즐비하다. 토머스 제퍼슨 기념관도 그 중 하나다.

건물 안쪽 벽면에는 그가 남긴 문장들의 일부가 새겨져 있다. 미국독립선언서, 버지니아 종교 자유헌장 등에서 발췌한 것들이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제퍼슨의 맹서다. ‘나는 신(神)의 제단 앞에서, 인간의 정신을 억압하는 모든 형태의 독재를 영원히 용서치 않겠노라 맹세했다.’ 또 제퍼슨을 기념하는 가장 인상적인 동상은 프랑스 수도 파리 한복판의 센 강변에 있다. 프랑스 혁명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제퍼슨은 주 프랑스 대사를 지낸 미국의 대표적인 친 프랑스파 인사였기 때문이다.

이 동상은 손에 문서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인데 독립선언서와 같은 거창한 문서가 아니라 제퍼슨이 로마의 판테온(Pantheon:모든 신을 위한 신전이라는 뜻으로 萬神殿이다)을 모델로 직접 설계한 버지니아 몬티셀로의 설계도다. 그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우리 모두에겐 죽음이 무르익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죽음으로써 또 다른 성장을 이루어야 할 바로 그때가 말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다 산 뒤에 남의 것을 탐할 수는 없죠.’ 그는 살아생전에 묘비명도 미리 써 두었다. ‘미국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종교의 자유를 위한 버지니아 법을 제정했으며 버지니아 대학을 설립한 토머스 제퍼슨 이곳에 묻히다.’ 고향 버지니아의 종교 자유에 기여했고, 민주주의의 기둥이 될 시민을 기르기 위해 대학을 세웠다는 ‘업적’만이 새겨져 있다. 제퍼슨에게는 어떤 자리에 올랐느냐보다 무엇을 했느냐가 중요했던 것이다. 그의 태도는 오늘날까지 많은 이의 귀감이 되고 있다. 제퍼슨 기념관이 워싱턴 D,C 심장에 서 있는 이유다.

미국의 지폐 2달러(한화 약 2250원)는 행운을 가져다주는 지폐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부적(符籍)처럼 지갑에 넣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2달러 지폐는 활용도가 낮아 발행 장수가 많지 않다. 희소성이 있는 이유는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가 동료 배우에게 2달러를 선물 받고 모나코의 왕비가 되면서 행운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지폐에는 토머스 제퍼슨의 모습이 실려 있다. 필자도 30여 년 전에 교우로부터 2달러 지폐를 선물로 받고 지금까지 건강을 잘 유지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으니 제퍼슨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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