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신춘 소회 동지(冬至)를 지나면 눈에 띄게 해가 길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누구나 습관적으로 몸에 밴 시각에, 아침밥이나 저녁밥을 먹는 것이 얼추 같은 시각인데, 동지 전에는 저녁밥을 먹을 때면 불을 켰었는데, 며칠 새 불을 켜지 않아도 되는 것을 보면 해지는 시각이 늘어지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밤낮의 길이가 같은 추분에서부터 밤이 점차 길어져 동짓날의 밤이 제일 길어진 것은 실감하지 못해도 동지를 지나고부터 어둠 살이 점점 더디게 오는 것은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밤이 짧아졌다는 것을 느끼기에는 아직도 밤이 길다.
죽자 사자 변명을 해대면 정말 그게 옳았냐고 다그친다. 그래, 그 정도도 안 되냐고 대들어본다. 어쨌거나 합리화시키려 해도 답이 꼬인다. 아귀가 맞을 까닭이 없다. 변명조차 궁색해진다. 아무리 둘러대도 아귀가 안 맞으니 제풀에 화가 난다. 당당하지 못해서 부아난다. 떳떳하지 못해서 비굴해진다. 길을 두고 왜 뫼로 가느냐고 따지고 들면 세상 핑계를 들이댄다.
다른 사람도 다들 그렇게 한다고 항변한다. 거짓말 못 하면 정치 못 하고 안 속이면 장사 못 하고 아부 아첨 안 하면 승진 못 하고 꼼수 안 쓰면 사업 못 하고 위선 아니면 앞에 나서지도 못하고 바른 소리 해도 편들어주지 않고 좋은 일 생기면 시샘하고 넘어지면 밟고 가는 세상인데 뭘 어쩌라고 하며 대들면 대들수록 비참해진다.
현실은 실익의 편에서 우쭐거리고 양심은 실리 앞에서 주눅이 드는데 어찌해야 당당해지고 어떡해야 떳떳해질 수 있을까. 잠 못 들어 더 긴 밤, 휘둘리기만 하는 일상에서 잃어버린 나를 불러내면 답이 있다. 내가 만든 신(神)은 인색하고 신이 만든 나는 더 인색하다. 돌아보지 않으면 뒤가 안 보이고, 뒤가 안 보이면 앞을 가늠할 수 없다. 바람에 데이고 햇살에 찔리며, 생으로 앓느라고 서리서리 사린 꿈을, 신춘에 마음 다잡아 굽이굽이 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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