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디카시 광장-소뇌위축증
수요 디카시 광장-소뇌위축증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1.30 11:09
  • 1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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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구수영/시인
디카시_백민호/시인

소뇌위축증

 


어지럽게 흔들거리는 오늘
삐뚤거리는 글씨로 노래하고
아름다운 날 커피잔이 춤춘다
잊어버린 이름을 어눌하게 부르는

저 꽃이 내일이며 희망이다

_백민호


<해설>산책을 자주 합니다. 동네 하천이나 산길 그리고 주택가 골목을 주로 걷습니다. 산책을 통해 계절의 변화나 사람들의 움직임을 눈여겨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걷지요. ‘바람 구두를 신었던 사나이’로 불렸던 천재 시인 랭보는 1871년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시인은 견자見者가 되어야 한다’라고 했지요. 견자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사람을 뜻하지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이는 현실에 짓눌리지 않고 현실을 뚫고 나가야 한답니다.

디카시를 쓰는 시인들 역시 ‘바람 구두를 신은 견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디카시는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 쓰는 시가 아니잖아요. 산책이든 여행이든 일단 나가야 합니다. 길 위에서 만나는 렌즈를 통해 잡아낸 시인 만의 피사체는 관점에 따라 참 다양하지요.


오늘 디카시는 ‘소뇌위축증’입니다. ‘소뇌위축증’은 ‘소뇌가 점차적으로 손상되어 그 기능을 잃어가는 질병’이라고 합니다. 소뇌는 우리 몸의 균형을 잡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지요. 그런 곳이 기능을 잃으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문제가 보행장애입니다. 이 시를 쓴 시인은 이십여 년 전에 소뇌위축증 진단을 받았다고 합니다. ‘어지럽게 흔들리는 오늘/ 삐뚤거리는 글씨로 노래하는/ 아름다운 날 커피잔이 춤춘다/ 잊어버린 이름을 어눌하게 부르는/ 저 꽃이 내일이며 희망이다’


큰 나무가 베어지고 밑동도 사라져 테두리만 남았습니다. 그곳에서 시인은 점점 위축되고 있는 자신의 소뇌를 만납니다. 아득하고 눈물 날 것 같지만 시인은 그 안에서 핀 털머위꽃을 보며 희망을 노래합니다. 어지럽게 흔들리고 있지만, 삐뚤거리는 글씨지만, 시인이 쓴 시는 절대 어눌하지도 위축되지도 않았습니다. 힘내세요.

글_구수영/시인

 

 

백민호 시인
* 시사모.한국디카시학회 회원
 

 

 

 

 

 

구수영 시인
* 2018 계간 ‘시와편견’ 등단
* 시집 ‘나무는 하느님이다’, ‘흙의 연대기’ 출간
* 시집 ‘붉은 하늘’ 외 공저
* ‘제1회 한국자유문학상’, ‘시와편견 올해의 작품상’ 등 수상
* 시를사랑하는 사람들 전국모임, 한국디카시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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