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몸이 따듯해져요.
시와 함께하는 세상-몸이 따듯해져요.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2.07 14:09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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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몸이 따듯해져요.

손끝과 발가락 끝으로 형체 없이 지나가요
지나가고 있어요 지나가는 걸 느껴요
처음엔 울림이 내 몸을 두드리고
그 두드림이 더 깊이 몸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가고
지금은 울림마저 다 놓아버리고 그냥 느껴요
느낌도 지워버려요
다만 귀만 열어요 종이 언어 언어의 그림자 행간
두드림 소나기 의문 공감의 너울에 귀 기울여봐요
태반에서 지금 이 순간까지의 길이 확 뚫려요
들려요 그 리듬으로 내면으로부터 세상까지의 길이 보여요
생은 경청으로 더 더 넓어져요 귀는 더 소곳해지지요
들으면 보여요 보이면 살아나요
다 내리고 다 가지면
손끝 발끝의 착지에 힘이 가요
몸이 따듯해져요.

(신달자의 ‘책을 듣다’)

오늘은 독서와 관련된 내용의 시를 한 편 소개해 볼까, 한다. 독서는 간접적인 경험이라는 말이 있다. 신달자 선생의 ‘책을 듣다’는 어떤 자세로 독서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명쾌한 답을 해주시는 것 같다. 특이한 점은 선생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듣는다’라고 한다. “손끝과 발가락 끝으로 형체 없이 지나가요/ 지나가고 있어요 지나가는 걸 느껴요”라고 하는 말을 어떻게 연결 할 수 있을까.

손가락과 발가락은 당연히 몸으로 체득한다는 의미로 초보 단계의 책 읽기의 자세를 말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책을 읽는 과정을 “지나가고 있어요 지나가는 걸 느껴요”로 그리고 책을 읽은 다음 그 내용을 받아들이는 상황을 “처음엔 울림이 내 몸을 두드리고”라고 하여 책 속에 들어 있는 내용을 마음속 깊이 음미하면서 점차 책 읽기의 단계를 업그레이드해 가고 있음을 말한다. 그러니 책을 읽는다는 것이 여러 번의 정신적인 교감 단계가 있는 정도에 따라 독서력의 방법이나 다름을 간접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점차 내공이 쌓여가면서 다음 단계에서 몸으로 들어오는 체험적 감동도 어느 순간 느낌까지 지워버려야 한단다.

이 부분에서 독자들은 자칫, 선생께서 말씀하신 진의를 잘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감동까지 지워버려라.’라니?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제의 의미를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시제가 ‘책을 읽다’가 아니라, ‘책을 듣다’이다. 그렇다 종이의 언어와 그 언어 속의 그림자에 귀를 기울이라는 의미로 무턱대고 마음속에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의문(화두)을 가지고 책 속에 있는 저자의 생각을 깊이 생각해 보면서 나와 공감대를 형성해 보라는 말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태어났을 때부터 현재까지의 삶의 과정과 삶의 배경은 물론 세상의 이치를 바르게 볼 수 있을 것이고, 생각이 넓어지며, 먼 미래까지 볼 수 있는 시각이 갖춰지며, 남의 말을 바르게 알아들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손끝 발끝의 착지에 힘이 가요”처럼 행실이 바르게 될 것이며 마음이 푸근해질 것이라는 내용이다.

다소 고전적인 색깔을 띠고 있는 것 같지만, 원래 진리는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서두에서 언급한 “손끝과 발가락 끝으로 형체 없이 지나가요/지나가고 있어요 지나가는 걸 느껴요.”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고 형체 없이 지나가는 것과 지나가는 것의 느껴짐이 무엇인지 생각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작품을 통해 평소 사회적 명사들은 어떤 자세로 책을 읽는가 하는 궁금증을 해소할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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