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진주시 명석(鳴石)면 유래
명석이란 말은 ‘우는 돌’, ‘눈물의 바위’라는 뜻을 지닌다. 역사가 오래되었다. 고려 고종 17년 몽고 제국이 세계를 제패하면서 고려를 침략하게 된다. 이때 고려 조정에서는 각 성과 요충지를 수축해 적의 침략에 대비하라고 어명이 내렸다.
전국과 지방의 농민, 청년, 학생 스님들도 총동원하게 되었고 광제산 스님도 진주성 쌓기에 동참했다. 스님이 성 쌓기를 마치고 다시 산사로 돌아가고 있을 때 명석면 신기리 골짜기에 도달했을 때 산 뒤에서 산 아래로 절로 내려오는 두 개의 바윗돌을 보고 놀라 말하기를 “무령 석물이 어디로 가고 있느냐”라고 말했다.
명석면 운돌에 대해서는 유명한 성여신 선생의 ‘진양지’에 기재되었다.
중국 전 지역에는 명석산이 있으며 호남지역에 명석이라 지명을 찾아 볼 수 있다.
이 명석은 한 쌍의 수컷 돌과 암컷 돌로 구성되어 남자 여자 성기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성 문화로 인식되기도 한다. 수컷 돌은 귀부가 남자의 성기 끝의 귀두처럼 생겼다고 남근석이라 하고 암컷 돌은 여성 성기와 비슷하다고 보고 족두리를 쓴 여성이라 해석해 여성상으로 해석한다.
1973년부터 명석각을 지어 합석하고 면 단위 행사를 한다. 1988년 12월 도(道)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광제산 등산길에 잠시 멈추는 곳이다.
명석각 마당에는 명석면 출신 항일투사로 일경과 총격전 끝에 체포되어 6년 징역형이 언도되고 옥고를 치른 김용익(金溶益) 선생 공적비가 건립되었는데 필자가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2009년)케 해 드리고 공적비문도 지어(2010년 6월) 모셨고 2013년 6월 안내판을 세워 드렸고 구 시청 앞에서 세미나도 3차례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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