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때로는 인생무상을 느낀다(2)
기고-때로는 인생무상을 느낀다(2)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2.18 12:50
  • 15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호석/합천 수필가

이호석/합천 수필가-인생무상을 느낀다(2)


퇴직하고 삼사 년 정도 기간에는 군청이나 읍사무소를 가면 함께한 후배 공무원들이 반갑게 인사를 하며 맞아주어 아직도 내가 그 소속의 일원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내가 떠난 자리를 지켜주고 있는 후배들이 든든하고 자랑스럽기도 하였다.

야속한 세월은 너무 빨랐다. 퇴직 후 세월이 갈수록 군청과 읍사무소에 갈 일도 뜸해졌다. 육칠 년이란 세월이 금방 지나고 찾아간 민원실에는 함께한 후배 공무원들이 과장, 계장으로 승진하여 이리저리 자리를 옮겼고, 민원창구에는 차츰 새로운 얼굴들로 바뀌었다.

세월은 나이와 같은 속도로 빠르다더니 정말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더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 10년, 20년이 금방 지나가 버렸다. 그때마다 군청과 읍사무소 민원실을 찾아가면 낯익은 후배 공무원의 숫자는 차츰 줄어들고 생면부지의 공무원이 늘어나고 있다. 나는 이런 변화를 보면서 가끔 바다의 썰물과 밀물 생각을 했다. 함께 근무했던 후배 공무원들이 세월의 썰물 따라 물물이 흘러나가고, 신규 공무원들이 세월의 밀물 따라 들어온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퇴직한 지 30여 년이 된 지난 2024년 1월 어느 날, 자동차 이전 관계로 군청 민원실을 찾았다. 이리저리 돌아보았지만, 민원실에는 안면 있는 후배 공무원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고, 인사하는 사람도 없다. 드디어 흐르는 세월에 100% 교체가 된 것 같아 서운함이 앞섰다. 세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변화이지만 내 인생의 세월에서 작은 변곡점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갑자기 객지의 어느 기관에 와 있는 것처럼 낯설고 서먹해졌다.

내가 공직에 있을 때보다 지금은 사무실 근무 환경이 매우 좋아졌다. 그때는 실과마다 사무실 전체가 개방되어 있고, 책상 곳곳에는 담뱃재떨이가 놓여있었다. 또 공문이나 서류는 밀랍을 먹인 원지에 철필로 긁어 등사판에 밀어서 제작하였다. 80연대 초쯤부터인가 두서너 개의 실과마다 사무 기계화의 시초인 한글타자기 한 대씩 놓였고, 타자수 여직원이 공문을 마무리하였다. 그때 타자수는 인기가 좋았다. 동시에 여럿이 타이핑을 부탁하면 슬쩍 제 마음에 드는 사람부터 해주는 얄미운 짓을 할 때도 있었지만, 그런 행위가 그리 밉지는 않았다.

지금은 사무실도 깨끗하고 개별 자리마다 낮은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고, 컴퓨터가 설치되어 있어 격세지감을 가진다. 나는 관공서의 개별 가림막을 볼 때마다 두 갈래로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자기 업무에 집중할 수 있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모 국회의원이 회의 시간에 주식 거래를 하고 있듯이 엉뚱한 짓을 하며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공동체보다 개인주의를 부추기는 것 같아 부정적인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요즘 가끔 행정기관을 들러보면 근무 환경도 좋아졌고, 발랄하고 능력 있는 젊은 공무원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대견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컬 때도 있다. 민원인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나 사무적이고 형식적인 것 같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이 흐르지 않는 냉랭한 사무실 분위기를 보면서 왠지 썰물이 빠져나간 황량하고 쓸쓸한 부둣가의 바닥 풍경이 떠오르며 씁쓸함을 느낀다.

민원인 가까이에 있는 창구 직원 한두 사람이라도 밝은 표정으로 친절히 인사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모든 민원인이 모두 가족 같은 포근함과 친근감을 느끼며 너무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공동체 의식보다 개인주의가 발전하고 있는 야박한 세월과 자연의 섭리에 따른 이런 변화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변화무상한 세월의 빠름과 인생무상을 느끼게 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