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든한 보훈 이야기-3.1절을 맞이하여
든든한 보훈 이야기-3.1절을 맞이하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2.19 12:3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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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달/경남서부보훈지청 보훈과
이현달/경남서부보훈지청 보훈과-3.1절을 맞이하여

지독히 추웠던 묵은해가 지나가고 벌써 봄의 기운이 완연한 계절이 다가온 것 같다. 다가오는 3월 1일은 1919년 우리 민족이 일본의 압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전국의 방방곡곡, 거리마다 대한독립 만세를 외쳐 부른지 105주년을 맞이하는 3.1 절이다.

3.1운동은 세계 독립운동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규모 운동이었고 일제의 무단통치 아래에서도 비폭력적이고 평화롭게 전개된 저항운동이었다. 이렇게 확산된 운동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로도 전파되어 해외에 있는 동포들도 동참하는 거족적인 투쟁으로 발전하였고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는 계기가 되어 독립운동의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이러한 3.1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은 구한말 일제가 조선을 강제 검거하고 경제적 착취는 물론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정신까지 말살시키고자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가혹한 식민 통치를 가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 통치에 대항하여 애국선열을 중심으로 줄기차게 국권 회복을 위해 국내는 물론 만주, 연해주, 중국, 러시아 등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일본인으로 가장하여 만주하얼빈 역에서 러시아군의 군례를 받는 우리 민족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러시아 경찰에 체포되어 이듬해인 1910년 3월 26일 중국에 있는 뤼순 감옥에서 사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고, 유관순 열사는 조선총독부 학무국에 의해 재학하고 있는 이화학당 학교가 임시휴교령을 내려 폐교하자 고향으로 내려와 1919년 4월 1일 천안 아우내 장날을 기하여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며 독립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 복역 중 옥 안에서 독립 만세를 고창하여 일제의 악독한 고문에 못 이겨 1920년 9월 28일에 출소를 1일 남기고 순국했다.

안중근 의사와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수많은 애국선열들은 굴복하지 않고 불법적인 일제 침략의 부당성을 국제사회에 알리면서 줄기차게 피로써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하여 마침내 광복을 맞이하게 되었다. 선열들의 이 같은 뜨거운 조국 사랑과 거룩한 희생으로 지켜낸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으며, 두 번의 올림픽을 개최하는 등 세계인이 부러워하고 후손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나라가 됐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그리고 국가유공자의 희생과 공헌 위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서 경제와 안 보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지만 경제만 중요시하고 안보에 무관심하다면 우리가 최근에 직면하고 있는 국내외적 난제를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우리 젊은 세대들은 대한민국의 독립과 호국의 역사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럴 때일수록 가장 어려운 순간에 일신의 안위를 버리고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신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을 우리 젊은 후손에게 알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제105주 년 3.1절을 맞아 미래의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젊은 세대에게 자랑스러운 독립과 호국의 역사를 바르게 알리고 애국선열들의 숭고한 나라 사랑 정신을 깊이 새겨 흐트러진 국론을 결집하여 선진국으로 도약할 새로운 결의와 각오를 다짐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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