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은 시인과 함께하는 시 여행-달의 손길
박정은 시인과 함께하는 시 여행-달의 손길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2.22 11:2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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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시인
박정은/시인 경남문협 회원-달의 손길

가지고 싶은 거라고 해야 고작
시집 두어 권 펼쳐 놓을 책상 하나

아무리 머리 굴려 봐도
들여놓을 틈이 없다

겨우 임대라도 얻은 것 마냥 들어간 딸의 빈 자리
책들이 차지하고 있던 공간에
비집고 들어가 앉을 자리 방석만 하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몸을 구겨 넣어 무릎을 안고 쪼그려 앉은
내 어깨를 가만가만 어루만지는 손길을 느낀다

허락도 없이 나보다 먼저 들어와
비좁은 방을 차지하고 있던 객이
혼자 남아 있는 나를 포근히 안아 주다니

왈칵 창문을 연다
달빛이 웃고 있다

<작가 노트>
신학기가 되었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공평하게 넘나드는 때인 것 같다. 아이 셋 중 셋째를 마지막으로 품에서 떠나보냈다. 북적거리며 빈틈없이 돌아가던 일상에 낯선 적막이 흐른다.

이십칠 년 만에 오롯이 나만의 방을 처음 가져 본다. ‘긴 시간 애썼다...’ 스스로를 쓰다듬으며 조심스럽게 아이들의 손때를 지워냈다. 하지만 작은방을 가득 채웠던 책들을 치우니 훨씬  넓어질 거란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내 자리는 방석만 한 건 왜일까? 허전함과 공허함이 넓어진 만큼 그 자리에 차지한 탓일 것이다. 비로소 자식의 마음에서 부모의 마음으로 승격이라도 한 것처럼 담대해야 함을 느낀다. 그  마음을 달빛이 위로해 준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달빛의 진심 어린 응원을 받으며 새로운 삶을 꿈꾼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공간에서 누구누구의 엄마가 아닌, 당당히 내 이름 석 자의 이름표를 달고 시작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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