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은/시인
가지고 싶은 거라고 해야 고작
시집 두어 권 펼쳐 놓을 책상 하나
아무리 머리 굴려 봐도
들여놓을 틈이 없다
겨우 임대라도 얻은 것 마냥 들어간 딸의 빈 자리
책들이 차지하고 있던 공간에
비집고 들어가 앉을 자리 방석만 하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몸을 구겨 넣어 무릎을 안고 쪼그려 앉은
허락도 없이 나보다 먼저 들어와
비좁은 방을 차지하고 있던 객이
혼자 남아 있는 나를 포근히 안아 주다니
왈칵 창문을 연다
달빛이 웃고 있다
<작가 노트>
신학기가 되었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공평하게 넘나드는 때인 것 같다. 아이 셋 중 셋째를 마지막으로 품에서 떠나보냈다. 북적거리며 빈틈없이 돌아가던 일상에 낯선 적막이 흐른다.
이십칠 년 만에 오롯이 나만의 방을 처음 가져 본다. ‘긴 시간 애썼다...’ 스스로를 쓰다듬으며 조심스럽게 아이들의 손때를 지워냈다. 하지만 작은방을 가득 채웠던 책들을 치우니 훨씬 넓어질 거란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내 자리는 방석만 한 건 왜일까? 허전함과 공허함이 넓어진 만큼 그 자리에 차지한 탓일 것이다. 비로소 자식의 마음에서 부모의 마음으로 승격이라도 한 것처럼 담대해야 함을 느낀다. 그 마음을 달빛이 위로해 준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달빛의 진심 어린 응원을 받으며 새로운 삶을 꿈꾼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공간에서 누구누구의 엄마가 아닌, 당당히 내 이름 석 자의 이름표를 달고 시작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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