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바람이 몹시 부는 날에도
시와 함께하는 세상-바람이 몹시 부는 날에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2.28 14:04
  • 15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바람이 몹시 부는 날에도
 
꽃잎이 시들어 떨어지고서야 꽃을 보았습니다
꽃잎이 시들어 떨어지고서야 꽃을 창가로 끌고 왔습니다
꽃잎이 시들어 떨어지고서야 꽃을 마음 끝에 매달았습니다
 
꽃잎 한 장 창가에 여직 남아 있는 것은 내가 저 꽃을 마음 따라 바라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당신이 창가에 여직 남아 있는 것은 당신이 나를 마음 따라 바라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흰 구름이 여직 창틀에 남아 흩날리는 것은 우리 서로 마음의 심연에 심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람 몹시 부는 날에도
 
(강은교의 ‘꽃잎 한 장’)
 
일반적으로 꽃은 오랫동안의 사랑이나 아름다움. 그리고 희망의 의미를 상징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특별한 남이면 꽃으로 마음을 대신 전하기도 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아무리 예쁜 꽃이라고 하더라도 한 곳에 오랫동안 두고 보게 되면 간혹, 예쁨을 느끼기 전에 당연히 거기에 존재하는 물건으로 치부되어 마음 깊이 담아두지 못하고 무심히 지나쳐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막상 그 예쁜 꽃이 시들고 병들게 되면 꽃의 안위에 대한 번민으로 여러 번 눈길이 가고 다시 창가로 끌고 와서 햇볕을 쬐게 하는 등 꽃을 살리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한다. 그래서 무관심했던 꽃에 대한 의지와는 달리 온통 마음이 빼앗겨 오랫동안 애정이 어린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경우도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가까운 가족 중 특히, 배우자나 부모님의 경우 오랫동안 함께 살아오면서 언제까지나 영원히 함께 할 것으로 생각되어 평소 무덤덤하게 바라보던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몸져누워있거나 혼자 남아 있게 되는 경우 “당신이 창가에 여직 남아 있는 것은 당신이 나를 마음 따라 바라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처럼 심한 상실감이나 그리움으로 번민에 빠질 수가 있을 것이다.
 
이번 시의 특징은 첫 번째 연에서 점층법을 통해 꽃에 대한 시인의 의식적인 상황을 극대화 하고 있다는 점인데, 꽃을 본다는 것, 창가로 끌고 왔다는 것, 그리고 꽃을 마음 끝에 매달았다는 이야기들은 결국 ‘꽃’에 대한 심한 번민을 두게 되었음에 대한 주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도에서 시인이 말하는 ’꽃잎‘은 일반적인 단순한 꽃 이상의 메타포를 가진다는 것이 물론임을 생각할 수 있다.
 
강은교 시인은 꽤 연세가 있으신 분이다. 그동안 시인 주변에 많은 사람이 병상에 있거나 더러는 작고하신 분도 있을 것이다. 가끔 /흰 구름이 여직 창틀에 남아 흩날리는 것은 우리 서로 마음의 심연에 심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는 말처럼 흘러가는 구름이 무심히 보이지 않을 경우가 종종 있으실 것으로 생각한다. 더구나 꽃잎이 흩날리며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면 더더욱 심적인 번민에 빠질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여기서 말하는 바람이란, 창문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일 수도 있겠지만, 뜻하지 않은 세파에 시달리는 원근의 지인들로부터 들려오는 비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바람이 몹시 부는 날에도”라는 마지막 어구에서 오래도록 눈길이 멈춰지는 것은 삶의 정상에 서 있는 시인이 바라보는 꽃의 의미에 공감하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