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채워진 술잔(2)
기고-채워진 술잔(2)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3.04 11:33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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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자/합천 수필가
문경자/합천 수필가-채워진 술잔(2)

그때 순이가 술이 빠졌네 했다. “여기요 맥주 2병 주세요”하고 주문을 하였다. 술 잔을 들고 맥주를 두 병 가지고 오는 알바 아주머니의 모습이 아슬아슬하게 보였다. 맥주잔을 각자 앞에 놓았다. 서로 부어주면서 잔을 가득 채웠다. 제일 먼저 왔으니 나보고 건배사를 하라고 했다. 얼떨결에 ‘우리 모임을 위하여’하고 난 후 잔만 부딪히고, 모기만한 소리로 ‘위하여’했다. 한 명도 웃지 않고, 술을 입으로 가져갔다. 조금 부끄럽고 겸연쩍었다. 술도 못 먹으면서 건배사를 한 내가 우스웠다. 다음에는 시키지 않겠지! 스스로 위로를 하였다. 연말이라 건배사도 유행에 맞는 것을 몇 개는 외워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우는 것도 머리가 나빠 실수를 할 수가 있다. 내가 쓴 시 한 줄도 외우지 못해 시 수업 선생님께 혼이 난 적도 많았다.

그래도 그날은 꼭 외워야 한다고 다짐을 하지만 그 다음 날이면 다 까먹었다. 한번은 고향 향우회 각 면 회장단 모임에서 있었던 건배사다. 17명에서 몇 분의 회장이 빠졌다. 좌로부터 차례로 건배 제의를 하였다. 오른쪽 마지막에 내 차례가 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생각했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외워 둔 건배사를 찾아 내는데 앞 글자는 알고, 뒤에만 알고, 끝에만 아는 것뿐이라 걱정이 되었다. 건배를 하는데 술잔을 들고 팔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도 모두 힘이 드는지 ‘짧게 해요’하며 웃었다.

술을 잘 마시는 회장들은 그때마다 잔을 채웠다. 나는 속으로 술을 마시게 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네 하고, 못 먹는 술을 들고 있으니 옆에 분이 “마셔요”했다. 술을 아예 못한다고 했더니 알았다고 하였다. 그러다 보니 내 차례가 되었다. 문학회 송년회에서 K선생이 알려준 건배사가 가물가물 생각은 나지만 완전하게 외워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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