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진주 금산 금곡3.1운동 이교륜
진주성-진주 금산 금곡3.1운동 이교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3.06 13:2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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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진주 금산 금곡 3.1운동 이교륜

경남 진주시 금산면과 금곡면에서도 3.1운동을 지도하다 옥고를 치른 분들은 이교륜, 김영재 투사들이다. 김영재(金榮在,1879~1933) 선생은 금곡면 서기(書記)로 근무할 때 1919년 3월 전국적으로 독립 만세 시위가 전개되고 3월 18일 진주 장날 교회 종소리를 신호로 3만 여명의 군중이 시위하는 투쟁을 직접 목격하고 감동을 받아 금곡, 금산에서도 시위를 하기로 작정하고 평소에 잘 아는 금산면 이교윤(李敎倫,1897~1978) 선생께 연락해 비밀회의를 개최했다. ‘독립의뢰서’, ‘조선독립완문서’, ‘조선독립협력서’ 등을 작성해 각 면장, 이장들에게 발송하고 조선독립을 위하여 협력할 것을 촉구하였다.

진주 법원과 군청 정문, 진주고 학생들과 각급 학생들에게 직접 지은 격문을 배포하고 게시하였고 시위에 동참하자고 독려했다. “조선의 총대장 박모가 조선 13도를 조직하려 하니 만민은 열복하고 충절을 다하여 왜적에게 모멸당하지 말자”라고 외치고 3월 22일, 23일 양일에 걸쳐 진주 시내 곳곳에 격문을 붙이고 대한독립만세를 독려했다. 격문을 붙이고 시위를 촉하하다 일경에 발각, 체포되어 엄중한 조사와 혹독한 고문을 받고 혼절하기도 했다.

김영재 선생과 이교륜 선생은 보안법 위반, 출판법 위반으로 부산지법 진주지청에서 징역 8월형과 10월형이 각각 언도되었고 법적 투쟁을 위해 대구복심법원에 항소하였고 김영재 선생은 형이 가중되어 징역 1년형이 언도되었고 이교윤 선생은 원심 그대로 10월형이 언도되었고 다시 고등법원에 상고해 법적 투쟁을 전개했으나 복심법원 판결 그대로 형이 확정되어 대구 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김영재 선생은 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고 이교륜 선생은 93년에 건국포장이 추서케 해 드렸다. 필자가 문헌 기록을 찾아 공적서, 평생 이력서, 포상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한 결과 포상이 성사되었다.

금산면 갈전리 진주항일투사 추모비를 건립하고 127명의 공적을 함께 새길 때 위 2명을 포함시켜 공적을 깊이 새겨 모셨으니 국비, 시민 성금, 후손들의 후원금으로 2001년에 건립, 완성되었다.

이교륜 선생의 장남 이수호씨는 서울 성북동에 거주하면서 선조들의 애국 애족 정신을 계승하고자 한다. 진주시 금산면 금곡면에서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걸고 격문을 작성하고 배포하고 붙이고 투쟁했다는 사실이 감동적인 일이 아닐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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