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영화 건국 전쟁을 보고(1)
기고-영화 건국 전쟁을 보고(1)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3.12 14:47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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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석/합천 수필가
이호석/합천 수필가-영화 건국 전쟁을 보고(1)

합천시네마에서 요즘 전국에서 한참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는 ‘건국 전쟁’을 친구들과 함께 관람하였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기대감과 흥분에 휩싸여 있었다. 지금까지의 영화는 주로 흥행을 위주로 하여 돈벌이에 목적을 두거나 아니면 편향된 이념적 영화를 만들어 국민 분열을 조장하는 그런 영화가 대다수였다.

이 영화에 기대감과 흥분을 가지게 된 이유는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된 지 70여 년이 지났으나 건국 초기의 집권당인 자유당이 4·19의거에 의해 몰락한 후 좌우 이념이 다른 정권이 이어지면서 건국 당시의 역사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였다.

또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학생들의 역사 교과서가 왜곡, 편집되기도 하면서 학생들은 물론 전 국민이 건국 무렵의 역사에 혼란을 가져왔다. 그런 과정에서 건국 대통령 이승만에 대한 사실은 더욱 멀어졌고 왜곡된 역사가 활개를 쳤다. 이번 ‘건국 전쟁’은 건국 당시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진실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건국 초기의 역사와 이승만에 대해 너무나 모르고 있었던 것이 부끄럽고 죄스러웠다. 이승만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고, 해방 이후는 우리나라를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만들기 위해 그 악조건에서 눈물겨운 노력을 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분 덕분에 남한이라도 이렇게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온갖 자유와 행복을 누리고 산다는 것을 생각하니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당시 그분의 일거수일투족 모두가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한 중요한 활동이었기 때문에 요약 기술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다. 그중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성공적으로 이룩한 가장 대표적인 노력과 정책을 요약해 본다.

첫째, 해방 이후 경제적 어려움과 혼란으로 남측이 무방비 상태에 빠져 있을 때 당시 소련의 계략 아래 탱크 등 신무기로 무장한 북한이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기습하여 파죽지세로 전국이 점령되다시피 하였고, 전쟁은 유엔군 인천상륙작전과 중공군의 인해전술 등을 거치면서 3년을 끌었다. 이에 미국은 하루라도 빨리 전쟁을 끝내고 떠나려고 미·소가 38선을 기준으로 휴전 협정을 하려 할 때, 이승만은 이를 강력히 반대하였다.

그 이유는 공산주의 종주국으로 대국인 소련과 중국이 바로 인접해 있고, 무장한 북한이 있는 이상 유엔군이 철수하면 남한이 한순간에 적화되는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이때 이승만은 전략적으로 2만여 명이 넘는 반공포로를 석방하여 전 세계에 인권을 존중하는 국가로 부상시켜 이목을 집중케 한 다음, 미국 대통령과 미국의 주요 정치인들을 만나 휴전 협정을 하려면 남한이 자립으로 살아갈 수 있고, 자체 안보 능력이 있을 때까지 유엔군을 주둔시켜 줄 것과 ‘한미우호동맹’을 맺은 후 휴전협정을 체결하라고 강력히 요구하여 이를 성취한 것이다. 만일 그때 이승만이 이런 주장을 관철하지 못했으면 우리나라는 벌써 공산화가 되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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