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진주 동부 3‧1운동 김기업 투사
진주성-진주 동부 3‧1운동 김기업 투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3.13 13:3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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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진주 동부 3‧1운동 김기업 투사

김기업(金基業) 항일투사는 임진공신으로 형조판서에 추증되고 공신록에 녹훈된 김준민(金俊民)장군(진주성 동문에서 전사)의 14세손이다. 진주시 이반성면 발산리 출신 김기업(이명: 형찬 1887~1949) 선생은 진주시 동부 5개면(일반성, 이반성, 사봉, 진성, 금산) 3‧1운동을 총지도, 지휘하신 분이다.

반성면 창촌 장날 장터 일대에서 군민 수백여 명을 모아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하신 분이다. 이반성 발산에서 반성 장터로 4km를 행진할 때 사전에 준비한 태극기를 제작하고 장대에 대형 태극기를 꼽아 앞세우고 시위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합창하자 당황한 일경은 시위대를 향해 일본도를 흔들기 시작했다.

군중들은 동서로 흩어지고 주모자들을 체포하기 시작하자 김기업 선생은 집으로 가지 않고 만주로 가기 위해 밤이 새도록 달리고 달려 함경도 웅기까지 피신했다. 김기업 선생이 두만강을 건너기 위해 망을 보다가 경상도 말씨 때문에 일경에 체포되어 진주경찰서로 압송되었다.

일경의 혹독한 고문으로 혼절하기도 했다. 1919년 8월 30일 부산지법 진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이 언도되었으나 1920년 4월 29일 12개월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석방되었다. 5개 면민을 지도한 분에게 건국훈장이 아닌 건국 포장을 추서했으니 참으로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자가 포상신청서, 공적서, 평생이력서 등을 작성해 제출한 결과 95년 8월 광복절에 건국포장이 추서되었고 국제신문, 부산일보, 경남신문, 경남매일 등에 보도 자료를 보내고 보도케 해 드렸다.

건국포장이 추서된 사실은 한국일보, 동아일보 등에도 보도되었다. 임진공신 김준민 장군 신도비(이반성 발산)를 경남도 문화재로 지정케 해 드리고 14세손 김기업 선생의 항일공적도 밝혀 건국 포장이 추서케 해 드렸다. 필자가 종친회 감사패를 받았다.

일반성면 류덕희 면장이 공적기념비 건립 추진위원장이 되고 전 부면장 김점포씨 자문을 받아 재현행사를 추진한다. 이반성면 길성마을 출신 김주용(1888~1955)선생은 백초월 스님께 군자금을 제공했고 박노일, 서명국, 강태웅, 조진규, 이재삼 등에게 군자금을 제공했다는 내용을 경상대학보 95년 11월 6일자에 소개해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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