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임란(壬亂)전후 조선비록(朝鮮秘錄)(4)
칼럼-임란(壬亂)전후 조선비록(朝鮮秘錄)(4)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3.18 13:18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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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웅/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강신웅/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임란(壬亂)전후 조선비록(朝鮮秘錄)(4)

‘김종득(金宗得), 성우길(成佑吉)’
만력(萬曆) 갑진년(1604년)에 김종득(金宗得)이라는 무인이 있었는데, 사람됨이 용렬하고, 합변(合變 :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변통하는 병법(兵法))할 줄을 몰랐으나, 인목왕후(仁穆王后 : 선조(宣祖)의 계비이자 영창대군(永昌大君)의 생모)와 같은 연안(延安) 김씨여서 분수에 넘치게 승진을 하였고, 허리에 황금 띠를 둘렀다고 할 만큼 부를 축적하였으며, 또 북병사(北兵使)에 제수 되었다. 당시에 어떤 번호(蕃胡 : 북쪽 변경에 사는 오랑캐. 여진족을 가리킨다.)

하나가 죽을죄를 짓고 국경을 넘어 간신히 50리를 간 연후에 그들의 소굴에 닿았는데, 앞길이 험한지 평탄한지를 몰라 근심이 되었다. 또 땅을 요구하는 한 번호는 실로 오랑캐의 복심(腹心)으로서 밖으로 의탁하고 안으로 붙좇는다는 평판을 들었는데, 그의 병사들을 데리고 앞서 가면서 길을 안내하기를 원하였다.

김종득이 그 술수에 떨어져서 날마다 그들과 함께 잠을 자고 모의를 하고 군대를 동원할 기일을 약정하였다. 땅을 요구하는 번호가 김종득보다 앞서 뒤를 따라가 저녁을 틈타 출발하여, 밤길을 가서 엄습하려 하였다. 30여 리를 가자 땅을 요구한 번호가 전마(戰馬)가 피곤하고 목이 마르니 잠깐 쉬어서 죽을 만들어 말에게 마시게 하자고 요청하였다.

병사가 허락하니, 그 군사가 일자진(一字陣)을 만들었는데, 태우는 불빛이 산과 골짜기를 밝게 비추었다. 땅을 요구한 번호의 한 진영이 모두 함성을 질렀다. 그 까닭을 물으니 말하기를 “노루나 사슴이 지나가서 군대가 놀라 고함을 지른 것입니다. 또 호인(胡人)들에게 들리게 해서 예비하려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날이 밝으려 할 때 군대가 당도했는데, 오랑캐 소굴의 여러 곳에 매복해 있던 오랑캐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돌격하니, 군대가 놀라 무너졌다.

마침 군중에 성우길(成佑吉)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나이가 젊고 용감한 사람이었다. 말을 풀어놓아 돌격을 하여 상당히 많은 적을 죽였다. 우리 군사를 불러 모아 둥글게 진을 치고 사방으로 적에게 화살을 쏘니, 적이 조금 물러났다. 곧 병사를 지휘하여 서서히 물러나니, 패한 군사 중에 태반이 살아 돌아온 것은 성우길의 힘이다. 김종득은 잡아다 치죄하고는, 직책을 바꾸고 폐고(廢錮 : 일생 동안 벼슬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 처분 하였다.

그나마 군법에 따른 처벌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은 왕후 덕분이었으니, 투서기기(投鼠忌器 : 쥐에게 물건을 던져서 때려잡고 싶으나 곁에 있는 그릇을 깰까 두려워한다는 말로, 임금 곁의 간신을 제거하려 하여도 임금에게 누가 미칠까 두려워한다는 뜻)라 할 것이다. 성우길은 통정대부에 특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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