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남사 예담촌
진주성-남사 예담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3.19 14:3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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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남사 예담촌

봄꽃 소식이 얼핏얼핏 들려오면 꽃향기가 설핏설핏 오지랖에 스며든다. 잔설을 들치고 복수초가 피었다니 매화 옛 가지에 송골송골 맺힌 봉오리가 눈앞에 아른거려 마음이 바빠졌다. 어림짐작이 지레 서두르며 가지마다 꽃을 피워 꽃내음을 품어낸다. 두어라, 오늘 일은 저만치 밀쳐두고 꽃소식 뒤쫓아서 발길을 재촉했다. 들숨마다 매향이 시름을 털어내고 춘정을 불러온다. 그런데 웬걸, 세상사가 어지러워서일까, 필동말동 하여서 사나흘 걸러서 세 번째에 찾았더니 원정매가 만개했다. 옛 정취에 매료되어 해마다 봄이면 원정구려 원정매, 단속사지 정당매, 산천재의 남명매인 산청삼매를 옛적부터 찾았다.

보고 또 보면 또 다른 것이 보인다. 남사예담촌, 누가 이토록 옛 세월을 붙들어 맸나? 유서 깊은 향리의 옛 모습을 길이 후손에 전하고자 온고지정에 밤잠을 설치고 법고창신에 몰입되어 여명을 걷어차고 연줄연줄 찾아서 집을 나서야 했던 그는 월헌 박우근 선생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제1호’로 지정받기까지의 과정을 뉘라서 알까? 가는 곳마다 서운함으로 발길 돌리기를 얼마나 했을까. 이치와 상식은 언제나 뒷전이고 오로지 규정에만 목을 매는 저들의 대답이야 “검토해 보겠다” 였으니, 이는 곧 ‘하지 않겠다’라는 것을 익히 알면서, 그래도 이것만은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 다잡기를 또 얼마나 했을까.

세상일에 앞장서면 돕는 사람보다 쪽박 깨는 사람이 더 많아, 칭송과 찬양은커녕 시기와 폄하의 시류가 팽배한 세상인 줄 알면서, 사돈 팔촌이 아니라 남 사돈 열 촌까지 찾아다니며 기어이 국가 지정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제1호 남사예담촌’으로 지정받았다.

일을 만들면 일이 일을 만들어 낸다. 면우 곽종석 선생의 유림독립운동기념관과 기산 박헌봉 선생의 기산국악당을 기림의 집념으로 세웠다. 끝인가 하면 끝이 아니고 또 시작이다. 옛 정취를 얽어맨 전선을 걷어내고 전신주를 뽑아야 했다. 저절로 없어진 것이 아니건만 생각 없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휴대폰을 들이민다. 옛 정취 말아먹고 사진 망치는 터줏대감 전신주를 뽑고 전깃줄을 걷어냈다. 가랑비에 옷 젖고 입에서 단내 나는 그 속을 누가 알랴. ’남사리연혁비‘옆에 ‘애향 지사 월헌 박우근 선생 공적비’를 세워야 할 것 같다. 매향과 함께 애향도 길이 후세들에게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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