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진주사범의 교사들 내가 포상 성사
진주성-진주사범의 교사들 내가 포상 성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3.20 11:0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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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진주사범의 교사들 내가 포상 성사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한 교사들 8명의 항일공적을 필자가 찾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케 해 드렸다. 창원시 웅천면 출신 이명상(李明祥:이명 昌吉)선생은 보통학교 졸업하고 진주사범학교(교육대 전신)특과를 졸업(1929.3)했다. 성적이 뛰어나 마산보통학교 교원(훈도)으로 발령을 받아 근무하게 되었다.

일본인 교수(교유)들의 교육을 받고 졸업했지만 가슴속에 애국 애족심이 심화되고 일제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었다. 김두영, 강용운, 이화준, 신영갑, 장영수, 최명석, 권우성, 이명상 등과 교육노동자협의회를 결성하고 투쟁하면서 학생들에게 민족 교육을 실시하였다. 학생들에게 우리 민족이 일본보다 우수하고 4천년 역사 민족임을 강조하였다.

산청군 시천면 출신 장영수(1909~1969) 선생은 1931년 3월 진주사범을 졸업하고 하남보통학교 교사가 되고 이어 의령군 대의보통학교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학교 교정에 기념비 건립)
1932년 10월 경남교육총회에 참석한 교사들과 함께 산업별 적색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장영수 선생은 1933년 5월 22일 60여 명 학생들과 의령 자굴산 정상에 올라 독립만세를 합창하고 일경에 체포되어 1934년 7월 부산지법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이 언도되어 옥고를 치렀다.

함안군 군북면 출신 강용운(姜龍雲)(1911~1967)선생은 사범학교를 졸업(1931.3)하고 사천보통학교를 거쳐 김해명지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할 때 경남교육노동자협의회를 조직할 때 동참하고 1934년 7월 징역 2년형이 언도되었다. 출옥 후 1943년 6월 의사 시험에 합격해 밀양군 수산에서 20여 년간 수산의원 원장으로 봉사했다. 자제 강연란은 고 노재필 변호사(국회의원)의 자부인데 노 변호사와 필자의 선친과 깊은 친분이 있었다.

사천시 서동 출신 최명석(崔命錫: 1913~1968)선생은 진주사범을 졸업하고 교사 근무하다 경남교육노동자협의회를 조직할 때 동참하고 1934년 7월 징역 2년형이 언도되었고 1937년 4월 27일 부산형무소에서 가출옥했다.

진주사범학교 졸업생들의 항일투쟁은 동아일보 1933년 12월부터 8차례 보도되었고 강용운, 이명상, 신영갑, 장영수, 정두명, 이화준, 최명석, 권우성 선생 등은 95년 96년 사이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도록 필자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협력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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