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서울
그들의 서울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7.27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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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지/SK에너지
사보 편집기자
서울은 참 신기한 도시다. “출퇴근 하는 데엔 한 시간 정도 걸려요” 하면, “적당하네요”라고 대답하는 도시. 그녀는 오늘도 빽빽한 전철에 몸을 싣는다. 하이힐을 신은 발이 점점 불편해져 오면 내리는 사람도, 타는 사람도 많은 환승역에서 눈치작전을 펼쳐야 한다. 열차가 신도림역을 통과하고 나면 전철 안은 본격적인 압박이 시작된다. 출퇴근 시간대의 신도림역은 인간 쓰나미를 연상케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인파들 틈에 갇힐 때면 그녀는 항상 “신도림역 안에서 스트립쇼를” 이라고 외치던 자우림의 노래를 생각했다. 이 역사 안의 어디에 스트립쇼를 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될 수 있을까. 아마 제대로 된 쇼를 펼치기도 전에 압사당하고 말리라. 전철은 언제나 혼잡하고, 버스는 배차시간을 지키는 법이 없고, ‘좌석버스’라 운임이 비싼 광역버스는 항상 만원이라 좌석엔 앉아본 적이 없고. 그래도 물가인상에 따라 교통요금도 인상이 된단다.
낙후된 건물을 재개발하여 도시경관을 가꾸고, 더 나은 주거문화를 제공하겠다는 서울시 SH공사의 광고가 실린 지하철 광고판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이, 그는 면접장에 도착했다. SH공사 보상 팀이었다. 새벽에 잠이 든 사이 강제 철거가 이루어져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이 로비를 점령하고 농성을 하고 있었다. “원래 재개발이 결정되면, 기존에 살고 있던 주민들이 만족하는 경우는 없어요. 그들의 민원상담을 하면 되요. 업무에 필요한 지식이 많은 건 아니고… 관련된 법규 몇 가지만 숙지하고 있으면 되는데, 쉬워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예요” 면접관은 심드렁했다. 그는 로비의 사람들을 떠올렸다. 보상이 그토록 쉬운 업무라는데, 그래서 인턴도, 계약직도 아닌 단순 사무보조만 채용한다는데. 왜 로비의 사람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농성을, 그럼에도 계속해야 할까. 그는 결코 철거민이 행복해질 수 없는 관련 법규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공사 사람들과, 그렇다면 왜 존재하는지 모를 보상 사무보조 업무에 대해 번갈아 생각하며 다시 전철에 몸을 실었다.
평일 오후, 공사가 위치한 강남 한복판을 통과하는 3호선 전철 안은 한산했다. 어떤 얼룩도 지울 수 있다는 세척제를 이천 원에 판다는 아저씨가 직접 와이셔츠에 낙서를 해가며 불법 상행위에 열을 올리고 있었지만, 강남 아줌마들은 세탁비 정도는 신경 쓸 일도 없다는 듯 시선도 주지 않는 풍경이 이어졌다. 강남 사람들과 강북 사람들은 교대역에서 갈렸다. 그 역시 교대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해 자취방으로 향했다. 비교적 저렴한 자취방들이 모여 있는 관악구 일대에서 꽤 많은 젊은이들이 그와 함께 내렸다. 반대쪽에서 오는 전철에서도 우르르 사람들이 내렸다. 한 여자가 하이힐을 신은 발을 절뚝이며 내리는 모습을 보았다. “응, 오늘도 서서왔지 뭐. 회사 가까운 곳 방값이 비싸서 안 돼” 통화하는 지친 말소리에는 그에게도 익숙한 지방색이 묻어났다. 도시의 화려한 밤, 그들은 각자의 좁은 방안에서 복도를 지나가는 타인의 낯선 말투에 뒤척이며, 약간의 향수와 더 나은 내일에 대한 상념을 뒤로하고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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