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보르자크의 음악
드보르자크의 음악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8.25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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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진/수필문우회 회장

안토닌 드보르자크(Antonín Dvořák 1841-1904년)는 보헤미아 작곡가로서는 처음으로 그 이름을 세계에 널리 알린 음악가이다. 그에 앞서 연작교향시 《나의 조국》을 작곡한 스메타나(B∙ Smetana 1824-1884년)가 체코음악의 창시자라고 한다면, 드보르자크는 그 완성자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곡을 두 개 뽑아 본다면 《교향곡 제9번 신세계》와 《첼로협주곡 B단조》일 것이다. 이 2곡은 모두 그가 1892년부터 1895년까지 3년간에 걸쳐 2차례의 미국 뉴욕 체재 중에 작곡한 것이다.


《신세계》는 첫 번째 뉴욕 체재 중에 완성되어 1893년 12월16일 그가 임석한 가운데 '카네기홀'에서 안톤 자이들(Anton Seidl)의 지휘로 뉴욕 필하모닉에 의하여 초연되었다. 이 곡에는 그가 미국에서 들은 흑인의 영가나 아메리카 인디언의 민요 등의 선율이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노래를 그대로 주제의 재료로 차용한 것이 아니고, 민요의 정신에 자신의 창작적인 악상을 동화시킨 것이었다. 드보르자크는 진정한 의미에서 최초의 미국교향곡이라고 볼 수 있는
《신세계》를 미국인에게 제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제2악장 라르고에서는 감동적인 중심 주제 〈고잉 홈〉을 감미롭게 들려준다.

《첼로협주곡 B단조》는 드보르자크가 심한 향수병에 걸려 1894년 6개월 동안 일시 귀국했다가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11월부터 작곡을 시작했던 곡이다. 귀국기간 중에 친구인 첼리스트 비한(Vihan)과 고향 보헤미아 지방을 돌며 연주여행을 했다. 그때 첼로를 위한 색다른 협주곡을 써보라는 친구의 권고를 받고, 그를 위해 작곡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곡은 《교향곡 제9번》과는 달리 그가 살았던 고향 시골마을 비소카(Vysoká)를 향수 어린 마음으로 그려낸 것이라고 한다. 그는 보헤미아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곡의 끝부분을 완전히 다시 고쳐 썼다. 이 마무리 단계에서 비한이 마지막 악장에 카덴차를 삽입하게 해 달라고 강하게 요구를 했다. 초연은 1896년 런던 퀸즈홀에서 이루어졌으며 영국의 첼리스트 레오 스턴(Leo Stern)이 협연했고, 드보르자크가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직접 지휘했다. 명곡이 드문 첼로협주곡에서 드보르자크의 곡은 빼어난 명곡으로 꼽히고 있어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자주 연주되고 있는 곡 중의 하나이다.

1980년대 중반 워싱턴에 출장 갔을 때 '케네디 센터' 음악회에 간 적이 있다. 연주 곡목 중의 메인 프로그램이 드보르자크의 《첼로협주곡 B단조》이었다. 그때의 워싱턴 내셔날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가 로스트로포비치였는데, 그날 저녁은 그가 첼로 독주협연도 하고 지휘도 맡았다. 그는 3악장을 모두 연주하는 동안 악장 첫머리에는 서서 지휘를 하다가 독주를 할 차례가 되면 자기의자로 가서 첼로를 힘차게 연주했다. 로스트로포비치도 슬라브 민족의 한 사람이다. 그의 이 곡에 대한 열정이 잘 나타나 보이는 뛰어난 퍼포먼스였다.

케네디 센터 1층 청중석 중앙에는 아래 쪽 무대를 향해 넓은 통로가 두 줄 나 있다. 그날은 그 중 한 통로의 입구에 과체중으로 자기 지정좌석에 가서 앉을 수 없는 30대쯤의 여인이 혼자 서서 음악을 듣고 있었다. 여인은 한 악장이 끝날 때마다 주변을 서성거렸다. 그러나 그런 고생을 하면서도 여인 얼굴에는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 즐거움이 넘쳐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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