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적멸(寂滅)사상(Ⅰ)
불교의 적멸(寂滅)사상(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9.01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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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웅/한국국제대학교 국제한국어교원학과 교수/지리산막걸리학교 교장

중국이란 대평원적인 문화토대에서 근대 이후 서양의 문물이 준 영향 이외에 가장 큰 외래 세력으로 중국의 전통을 변질할 만큼 전환을 일으킨 것은 불교였다. 그것은 엄청난 문화상 사상상의 감염이었다. 위진(魏秦) 이후는 이미 스스로의 영토에 뿌리박아 전연 이질적인 것을 느낄 수 없도록 동화된 것이다. 본 절에서는 구태여 불교의 교리나 기원을 부연할 필요는 없고 다만 중국에 전래된 이후의 과정과 영향을 살피기로 한다.

석가모니의 연대는 대강 주 장왕(周莊王) 10년(BC 687)에서 주 광왕(周匡王) 5년(BC 606) 전후가 된다. 불교의 중국 전래설에 대해선 이 설이 분분하다. 공자 때 이미 부처의 교화가 있었다느니, 진시황 때라느니, 혹은 전한의 장건(張騫) 때 전래되었다고 하지만, 불경이 처음으로 중국에 전습된 것은 서한 애제 원수(西漢哀帝元壽) 1년(BC 2) 박사제자인 진경헌(秦景憲)이 서역의 대월씨(大月氏)나라 사신 이존(伊存)으로부터 부도경(孚屠經)과 축법란(竺法蘭) 등과 함께 60만언(萬言)의 불경을 백마(白馬)에 싣고 귀국한 해인 것이다. 바로 우리나라의 전래 연도로 공인되고 있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AD 372)보다 305년 앞선 것이다.
또한 최초로 절을 세운 것은 그 이듬해인 68년 낙양(洛陽) 옹관(雍關) 서쪽에서 백마사(白馬寺)를 세운 것이요, 최초로 불경을 중역(中譯)한 것 또한 같은 해였다.
그 뒤를 이어 동한 말년엔 안식국(安息國)의 왕자 안세고(安世高)가 와서 중국말을 익혀 <불경>을 번역하면서 소승(小乘) 불교를 전파했고, 대월지국의 명승 지루가참(支婁迦讖)이 낙양에 와서 반야경(般若經)을 번역하면서 대승불교를 전파했고, 천축나라의 축불삭(竺佛朔) 또한 낙양에 와서 도행경(道行經)을 번역했다.
불교 전파를 위한 역경사업은 동한으로부터 당(唐)대에 이르는 약 700년동안 역문의 체재가 정립되지 않은 채 역간되던 동한 말에서 서진(西晉)까지 약 250년간을 제 1기로, 3155권이나 되는 불경을 96명이나 동원시켜 역경사업의 전성시기를 이룬 동진(東晋)에서 수(隋)까지 약 270년간을 제 2기로, 현장(玄裝)대사의 1330권의 역경을 비롯한 많은 불경번역이 불교철학의 경지까지 끌어올린 당 정관(貞觀)에서 정원(貞元)까지 이르는 약 160년간을 제 3기로 나눌 수 있다.
불경사업 이외의 법사(法事)는 한 환제(漢桓帝) 때 궁중에서 황금불상을 주조하여 봉사를 시작했고, 헌제(獻帝) 때엔 민간에게도 송경(誦經) ‧ 욕불(浴佛) ‧ 설재(設齎) 등 신앙 방법을 유포시켰다. 한대 이래로 중원에서만 보급되던 불교는 3국시대에 이르러 광동지방과 월남지방까지 판도를 넓혔으니, 그 중 구명 창오광신(蒼梧廣信), 즉 지금 광등 봉천(封川)은 불교 전파의 남방 중심지가 되었고, 따라서 인도와 서역의 승려들은 돈황도(敦煌道)나 교광도(交廣道)를 통해 내왕을 활발히 했다. 이로부터 불교는 중국 전역에 전파되어 인도에 있어 불교 본유의 종파는 중국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 발전된 과정을 크게 2기로 나눌 수 있는데, 한위양진(漢魏兩晉)은 소승과 대승을 겸하여 인도불교의 중기에 상당하고, 남북조로부터 수당을 거쳐 북송에 이르는 시기는 대승불교만을 발양함으로써 인도불교의 후기에 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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