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웅/한국국제대학교 국제한국어교원학과 교수/지리산막걸리학교 교장
중국이란 대평원적인 문화토대에서 근대 이후 서양의 문물이 준 영향 이외에 가장 큰 외래 세력으로 중국의 전통을 변질할 만큼 전환을 일으킨 것은 불교였다. 그것은 엄청난 문화상 사상상의 감염이었다. 위진(魏秦) 이후는 이미 스스로의 영토에 뿌리박아 전연 이질적인 것을 느낄 수 없도록 동화된 것이다. 본 절에서는 구태여 불교의 교리나 기원을 부연할 필요는 없고 다만 중국에 전래된 이후의 과정과 영향을 살피기로 한다.
또한 최초로 절을 세운 것은 그 이듬해인 68년 낙양(洛陽) 옹관(雍關) 서쪽에서 백마사(白馬寺)를 세운 것이요, 최초로 불경을 중역(中譯)한 것 또한 같은 해였다.
그 뒤를 이어 동한 말년엔 안식국(安息國)의 왕자 안세고(安世高)가 와서 중국말을 익혀 <불경>을 번역하면서 소승(小乘) 불교를 전파했고, 대월지국의 명승 지루가참(支婁迦讖)이 낙양에 와서 반야경(般若經)을 번역하면서 대승불교를 전파했고, 천축나라의 축불삭(竺佛朔) 또한 낙양에 와서 도행경(道行經)을 번역했다.
불교 전파를 위한 역경사업은 동한으로부터 당(唐)대에 이르는 약 700년동안 역문의 체재가 정립되지 않은 채 역간되던 동한 말에서 서진(西晉)까지 약 250년간을 제 1기로, 3155권이나 되는 불경을 96명이나 동원시켜 역경사업의 전성시기를 이룬 동진(東晋)에서 수(隋)까지 약 270년간을 제 2기로, 현장(玄裝)대사의 1330권의 역경을 비롯한 많은 불경번역이 불교철학의 경지까지 끌어올린 당 정관(貞觀)에서 정원(貞元)까지 이르는 약 160년간을 제 3기로 나눌 수 있다.
불경사업 이외의 법사(法事)는 한 환제(漢桓帝) 때 궁중에서 황금불상을 주조하여 봉사를 시작했고, 헌제(獻帝) 때엔 민간에게도 송경(誦經) ‧ 욕불(浴佛) ‧ 설재(設齎) 등 신앙 방법을 유포시켰다. 한대 이래로 중원에서만 보급되던 불교는 3국시대에 이르러 광동지방과 월남지방까지 판도를 넓혔으니, 그 중 구명 창오광신(蒼梧廣信), 즉 지금 광등 봉천(封川)은 불교 전파의 남방 중심지가 되었고, 따라서 인도와 서역의 승려들은 돈황도(敦煌道)나 교광도(交廣道)를 통해 내왕을 활발히 했다. 이로부터 불교는 중국 전역에 전파되어 인도에 있어 불교 본유의 종파는 중국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 발전된 과정을 크게 2기로 나눌 수 있는데, 한위양진(漢魏兩晉)은 소승과 대승을 겸하여 인도불교의 중기에 상당하고, 남북조로부터 수당을 거쳐 북송에 이르는 시기는 대승불교만을 발양함으로써 인도불교의 후기에 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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