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힘겨운 사람들에게
삶이 힘겨운 사람들에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3.24 13: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경익/전)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대한 불교 조계종(曹溪宗)의 중천조(中闡祖)인 고려때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은 “땅에서 쓰러진 자는 스스로 땅을 짚고 일어나라”고 갈파하셨다. 영국 속담에 ‘넘어짐으로써 안전하게 걷는 법을 배우게 된다’고 하였고, 형원소어(荊園小語)에 ‘한 번의 좌절을 겪으면 한 번의 식견이 자란다(經一番挫折, 長一番識見)’고 하였다. 불이 쇠붙이를 단련(鍛鍊)시키듯 역경(逆境)은 사람을 단련시키는 법이다.


위대한 종교지도자도 무거운 짐을 잠시 들어 올려 줄뿐이지 결코 짐을 대신 져주는 분은 아니다. 인생이라는 무거운 무게의 짐을 지고 가야 할 사람은 자기 자신일 따름이다.

절에 가면 절 입구에 일주문(一柱門)이란 것이 있다. 두 개의 기둥으로 되어 있는 문이다. 나의 삶에도 작은 일주문이 있다. 하나는 종교라는 기둥이고, 하나는 삶이라는 기둥이다. 두 개의 기둥을 지나야 나를 찾게 된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경북 문경의 운달산(雲達山)에 가면 김룡사(金龍寺)라는 절이 있는데 일주문 기둥에 달아 놓은 주련(柱聯)에 이런 글귀가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이 문에 들어서 분별하는 마음을 버리리라. 분별없는 빈 그릇이라야 해탈을 이루리(人此門來莫存知解 無解空器大道成滿)'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알게 모르게 서로 얽혀 있는 것이다. 땅이나 나무나 풀들은 비를 맞으며 갈증을 풀고, 농사꾼은 비 오는 동안 휴식을 취하며 힘을 재충전한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자기 모습으로 자기 노력으로 살아가야 한다. 마음이 흔들리면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고 자신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산만한 마음이 정리된다. 흙탕물을 가만히 두면 흙과 물이 분리되는 것처럼 산란한 마음을 조용히 묶어 두고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가면 제자리의 자기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성철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업(業)을 씻고자 108배(拜)를 하는 것이다” 가장 순수한 상태를 불성(佛性)이라 한다. 그러니까 종교시설의 제단에 모셔져 있는 성인(聖人)께 절을 하는 것은 본래의 나로 돌아가는 연습이다.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숨기고 산 중국의 어느 비구니 스님이 남긴 오도시(悟道詩)를 보라 얼마나 자연스럽고 진솔하고 멋이 스며있지 않은가! ‘봄 찾아 이산저산 헤메이다. 허탕치고 집에 돌아와 뒤뜰 매화가지 휘어잡아 향기 맡으니 봄은 벌써 가지마다 무르익었네(盡日尋春不見春 芒鞵踏遍隴頭雲 歸來笑掂梅花嗅 春在枝頭巳十分)’ 봄을 찾으러 산을 헤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내 마음속 매화가지에는 이미 꽃이 피어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들 쫓기듯 살아가고 있다. 고요한 마음으로 그들의 모습을 가만히 보면 모두들 자기를 잃고 살아가고 있다. 몸과 마음이 따로따로 노는 삶은 온전한 삶이 아니라 반쪽의 삶인 것이다. 선가(選歌)에 이런 말이 있다. ‘온 몸으로 살고 온몸으로 죽어라(生也全機現 死也全機現)’ 여기서 ‘온몸’이란 몸과 마음이 하나 되는 것을 의미하리라. 즉 한 눈 팔지 말고 최선을 다해 살라는 말이다. 그래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자기 것이 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짧은 생의 시간에 온몸을 바치려면 누구라도 외로워 져야 한다. 홀로 차를 마시면서 차(茶) 한잔에 자족(自足)하는 노승(老僧)의 모습에서 우리는 깨달음의 실존을 느껴야 한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너무 복잡하게 사는 것 같다. 밥을 먹을 때도 온갖 계산으로 머릿속이 복잡하고, 잠잘 때도 이런저런 잡념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自畵像)이다. 자신의 삶을 남김없이 체험하지 못하고 남의 삶을 기웃거리는 이가 우리들인 것이다. 얼마나 우습고 어리석은 일인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어떤 이들은 세상을 구경하고 경영하는데 관심이 있다. 어떤 이들은 세상을 싫어하고 걱정하고 기피하며 숨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자기 세상을 만나 환희 속에 살거나, 세상을 뛰어넘어 살기도 한다. 혹은 좋은 시절 만나면 시선(詩仙) 이백(李白)처럼 ‘세상사는 게 꿈과 같으니 술잔이나 기울이리라’라며 허허롭게 사는 방법도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