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예찬
생활 예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3.2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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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다들 어렵다고 난리다. 내가 사는 우리 동네는 가난한 동네다. 붕어빵 장사도 예전 같지 않아 어렵다고 울상을 짓더니 진작 접었다. 붕어빵 장사를 하던 사람은 지금은 찌라시를 붙이며 산다. 파지를 줍던 아주머니는 줍는 사람이 너무 많아 벌이가 안 되니 빌딩 청소라도 해야겠다며 나에게 어디 자리를 알아봐 달란다. 알아봤더니 자리가 나기가 무섭게 사람이 들어온다며 난색이다. 나도 어렵다.


이런 때일수록 주변을 하번 더 살펴보며 사랑스런 사람과 일들을 찾으려한다. 어쩐지 벌써부터 기분이 좋다. 그런 사람과 일들이 있어서 실은 우리가 모조리 자살하지 않고 이나마 살아가는 것이리라.

내가 이 글을 쓰기를 기다렸다는 듯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랑스런 사람은 복실씨다. 복실씨는 우리 동네를 청소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진짜로 착한 사람이다. 버스 운전을 십년을 했는데 너무 신경 쓰이는 게 싫어서 청소일을 시작했단다. 저 착한 사람이 버스 운전을 하며 사람에게 신경쓰랴 운전에 신경쓰랴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가 생각하면 내 마음이 다 아프다. 복실씨가 착하다는 걸 증명하는 건 이 한 가지 일만으로 족하다. 옆집 할머니가 휴지가 떨어져 사야 된다고 걱정하자 자기 집에 이사 올 때 들어온 휴지가 많다며 당장 30롤 짜리 대형휴지를 갖다 준다. 그리고 그녀는 남의 험담을 하지 않는다. 험담을 하는 다른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과는 다시는 얘길 않는다.

그 다음은 우리 앞집에 사는 영희씨. 영희씨의 남편은 철수씨는 아니다. 그도 영희씨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착하다. 영희씨는 음식을 퍼주기를 좋아한다. 어제도 간장에 삭힌 귀한 고추를 한보따리 가지고 왔다. 꼭 뭘 얻어먹어서가 아니라 영희씨도 착한 사람임에 분명하다.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다. 소박하고 정직하고 게다가 알뜰하다. 음식을 퍼준다고 해서 헤픈 성격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 삭힌 고추만 해도 지난 가을에 손수 따온 것이다. 수확을 끝낸 고추밭은 서리 내리기 전엔 빨리 풋고추를 따야한다. 그때쯤이면 그냥 공짜로라도 따가라고 한다. 영희씨가 그때를 노려 공짜로 싱싱한 풋고추를 따온 것이다. 삭히는 김에 넉넉히 해서 나눠먹는 것이다. 영희씨는 생명을 기르는 데도 남다르다. 강아지와 여러 가지 화초들도 영희씨 집에서 아주 행복해 보인다.

이번엔 남자 중에서 사랑스런 사람을 찾아보자. 땡이 아빠. 그가 함께 다니는 강아지 이름이 땡이라서 우리 동네에선 그 사람을 땡이 아빠라고 부른다. 땡이 아빠는 8남매의 장남으로 남도 출신이다. 부친의 유산을 밑천으로 사업을 일으켜 동생들 모두 살만하게 해주었다. 슬하에 삼남매를 두었는데 그들 역시 훌륭하게 성장시켜냈다. 그리고 병든 노모를 거의 20년을 모셨다. 그 20년의 중간쯤에 부인이 사고로 대소변을 받아내야 했다. 노모는 이번에 편안히 돌아가셨고 부인은 이제 혼자 걸을 수 있을 만큼 회복했다. 이 모두 땡이 아빠의 지극한 간호 덕분이었다. 또한 땡이 아빠는 자신이 고생했기 때문에 동네 이웃이 고생하는 걸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말로라도 진심어린 격려를 한다.

내가 잘 가는 단골 마트가 있는데 여기 사장님이 순진 그 자체다. 아는 사람이 하도 해보라도 해보라고 해서 마지못해 마트를 하기는 했지만 천상 순진한 노총각이다. 어제 가지고 온 재고이기는 하지만 오늘 가지고 온 것과 별로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도 팔지를 못하고 단골들에게 공짜인심을 쓴다. 얻어먹는 우리는 좋은데 장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장가를 가야지, 하며 결혼 얘기를 꺼내면 금새 얼굴을 붉히며 베시시 웃는다. 혼기에 찬 딸이 있으면 얼른 사위 삼고 싶은데 딸이 없으니 좋은 여인을 만나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경상도 출신 노부부님. 노부부님은 참 금슬이 좋다. 영감님은 말마다 ‘그때 우리 할마이가 고생이 많았제’로 끝을 맺는다. 그러니까 자식들 키울 때나 성장해서는 사업에 실패했을 때마다 할머니가 험한 뒤바라지를 했다는 뜻이다. 또한 할머니는 말마다 ‘아이구, 우리 영감 없었시모 죽도밥도 안 됐을끼다’라며 영감님을 추켜세운다. 게다가 할아버지는 지금도 키가 훤칠한 호남이시다. 할머니는 요리솜씨도 좋아 심심찮게 요리를 해 오셔서 삼이웃이 나눠먹는다. 국수를 비벼온다, 김치전을 해온다, 수제비를 끓여온다, 호박죽을 끓여 오신다 해서 나눠먹는 것이다.

반도 안 했는데 지면이 넘쳐서 이만 줄여야겠다. 예상했던 대로 너무 좋다. 그러고 보니 나는 좋은 사람을 많이 알고 있다.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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