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 창원대 교수·철학자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사는 이 인간세상은 정말이지 끝도 없는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매일매일이 그렇다보니 이제 사람들은 웬만한 사건이 아니면 그다지 놀라지도 않는 것 같다. 아니 웬만한 사건이라 하더라도 그런 것 또한 하도 많으니 그런 강도(强度)에도 이젠 어느 정도 이골이 나 있는 것 같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지만 나는 최근에 일어난 ‘윤일병 구타 사망사건’과 ‘김해 여고생 잔혹 살해사건’에 대해 지금까지도 치를 떨고 있다. 굳이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입장이 아니더라도 이런 사건이 그 자체로 얼마나 엄청나게 ‘나쁜’ 일인지는 사실 자명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사건을 접하면서 특히나 가슴이 찢어지는 것은 그 가해자인 선임병들과 여중생들에게 그게 얼마나 ‘나쁜’ 짓인가 하는 인식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해서 그러한 그들이 되고 만 것인가.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그 이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철학이 가르쳐주는 존재의 근본법칙 중 하나가 아니었던가.
생각해보면 그들이라고 그러한 그들이 되고 싶기야 했겠는가. 어떻게 살다가보니 그러한 인간이 되고 만 것이리라. 이 ‘그렇게 되고 말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물론 그들 각자가 일차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겠지만, 또 한편 생각해보면 그들이 그러한 인간으로 만들어졌다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인간이란 애당초 나약하며 주변적인 사정, 여건, 상황, 특히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져나가는 ‘가소적’(可塑的)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러한 그들을 그렇게 만든 바로 그 ‘주변’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주변이란 일차적으로는 부모를 포함한 ‘가정’이다. 그리고 그들이 학생이고 군인인 한 그 주변은 또한 ‘학교’이고 ‘군대’이기도 한 것이다. 가정이나 학교, 군대 같은 삶의 장소들이 정상적으로 제 기능을 한다면 거기서 그러한 범죄를 저지르는 ‘괴물’ 내지 ‘악마’들이 자라날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지금 총체적으로 뭔가 심각하게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옳고 그름, 좋고 나쁨에 대한 가치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가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가정이든 학교든 군대든, 그것이 선의 집단이 될지 악의 집단이 될지는 모두 그 집단을 구성하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따라서 순진한 말 같지만, 가정이나 학교나 군대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선’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게 없다면 사태는 더욱 악화될 뿐, 개선의 여지는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진정한 선이란 어떤 것일까. 나는 철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단언한다. ‘나쁘지 않은 것’만 해도 일단은 선이다. 나쁘다는 것은 그렇다면 무엇인가. 역시 나는 단언하지만, 그 핵심은 자기 아닌 타인을 ‘함부로’ 생각하고 ‘함부로’ 대하는 바로 그 ‘함부로’에 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어느 틈엔가 걷잡을 수 없는 ‘함부로-사회’가 되고 말았다. 사람이 사람을 너무나 쉽게, 너무나 함부로 대하고 있다. ‘내가 하나면 너도 하나’, ‘내가 열이면 남도 열’이라는 가치만이 이 ‘함부로병’을 치유할 수 있는 열쇠가 된다. 너를, 그리고 남을 나처럼 생각한다면 어떻게 함부로 그를 욕할 수 있고 괴롭힐 수 있고 때릴 수 있고 죽일 수 있겠는가.
‘네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예수의 말과 ‘자기에게 싫은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공자의 말도 바로 그런 ‘함부로병’을 염두에 둔 치유의 철학이었다. 나는 이러한 철학이 이젠 가정은 물론 학교와 군대에서도 최우선순위로 ‘교육’되고 ‘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곳들은 사람으로서의 기본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소로 기능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학교와 군대가 ‘사건’의 생산처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사람’의 생산처로 오히려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철학자의 이런 충언을 부디 함부로 흘려듣지 않기를 나는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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