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과 지도자
과학기술과 지도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5.25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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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기상/한국교원대학교 
컴퓨터교육학과 교수

 장쯔민 주석이 중국을 통치하고 있던 2000년에 북경에서 세계컴퓨터학회(World Computer Congress)가 열렸었다. 학회의 개회 행사에 참석하기 위하여 행사장을 들어서면서 공항에서 봄직한 검색대가 설치되어 있고, 물건 하나하나를 검색하는 것을 보면서 중국이라는 나라는 참 별스럽게도 학회 개회식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학회 개회식에 축하 연설을 한다고 나선 사람을 보니 바로 장쯔민 주석이 아닌가! 참석자들과 불과 30여 미터 떨어진 연단에서 그는 한참동안 중국어로 작성된 원고를 무미건조하게 읽어내려 가더니, 그것을 접고 영어로 이제 진짜 연설을 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는 유창한 영어로 반도체 기술에 관한 최신 동향을 원고도 없이 약 15분 정도를 설파하는 것이었다. 

 또한 향후 중국이 몇 년에는 아시아에서 최대의 경제국가가 되고, 미국을 앞서게 되며 언제 세계 최대의 경제국가가 될 것인지 자신들이 가진 명확한 비전을 거침없이 밝혔다. 그리고는 두꺼운 학회 논문집을 들어 보이며 시간이 없긴 하지만 틈틈이 읽어 보겠노라고 말하면서 연설을 마무리하였다. 그가 상하이에 있는 대학에서 전기학과를 졸업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유창한 영어에 반도체 기술의 최신 발전에 관한 지식까지 갖고 있는 것을 보면서 중국이라는 나라의 발전이 눈앞에 보이듯이 선명해짐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당시 나에게 가장 크게 충격을 준 것은 그가 영어연설을 원고도 없이 할 수 있을 정도라는 것과 반도체 기술의 최신 동향을 줄줄이 꽤 차는 사람이 최고 지도자라는 것이었다. 최고 지도자가 외국의 변화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여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자신이 전공한 분야의 기술의 발전을 빠짐없이 따라갈 정도로 중국은 과학 기술에 큰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는 것이 부러움을 넘어 충격에 가까웠었다.

 그렇기에 중국이 괄목할 성장을 지속하며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도 이미 그때 그들의 비전을 들었기에 그리 놀랄만한 것이 못되었다. 명확한 비전과 거기에 이르는 구체적인 도구로서 과학기술을 이해하는 사람이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가능한 나라가 어찌 발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얼마 전에 입지가 결정된 과학비지니스 벨트를 생각해 보면, 우리는 어쩌면 국가의 중대사들이 다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닌 지 새삼 중국의 비전과 준비된 지도자들이 부러워졌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적어도 이런 영역의 장래 계획에서는 국가적인 비전과 방향의 일관성이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새로운 정책이나 새로운 모습으로 자신들의 일함을 국민들에게 보이고 싶겠지만, 국가 개발과 과학 기술의 발전은 어쩌면 그런 겉모습을 달리하지 않고도 지속적으로 지원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 정부에서 세웠던 계획이나 방향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새로운 정부에서 부정되지 않고 이어질 수 있다면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발전은 조금 더 빨리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런 점에서 중국이 공산당이라는 일당으로 이루는 일을 우리는 민주주의 방식으로 이루어 낼 수 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인류 역사에서 또 하나의 놀라운 일을 이루어 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여야가 바뀌는 정치 속에서도 국가지도자는 과학기술을 이해하는 분이었으면 한다. 지도자들이 이런 면면을 이어만 가도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의 장래는 매우 밝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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