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에 대하여
‘인재’에 대하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8.31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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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최근에 가까운 한 지인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하나의 인재가 세상에 나와 쓸모있게 쓰여 지는 데는 최소한 30년이 걸린다”는 것이다. 생각해봤다. 그리고 공감했다. 물론 20대의 천재들이 불후의 업적을 세상에 남겨주는 경우들도 없지는 않다. 윤동주나 기형도, 모차르트와 슈베르트도 그런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라면, 그래, 최소한 한 30년은 걸릴 것이다. 그 세월 속에는 적지 않은 비용은 말할 것도 없고, 엄청난 의지와 노력도 함께 용해되어 있을 것이다. 별의별 수많은 경험들도 쌓일 것이다. 그렇게 아주 어렵게 한 인재는 자라난다.


말이 그렇지 이 30년이라는 세월은 결코 만만한 게 아니다. 강산이 변해도 세 번이나 변할 세월인 것이다. 그렇게 긴 세월 속에서 마치 숙성되듯이 한 사람의 인재는 겨우 자라날 수가 있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주변에서 그런 인재들을 적잖이 보아왔다. 내 주변뿐만이 아니라 우리 한국사회 전체에 그런 인재들은 무수히 많다. 그들은 자원도 없는 우리 사회가 가장 소중히 아껴야 할 진정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이 자산을, 이 인적 자원을 제대로 관리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인재들이 과연 ‘세상에 나와 쓸모있게 쓰여지고’ 있는 것일까. 혹시 아까운 유실과 낭비 혹은 허비는 없는 것일까. 근년, 사회적 문제가 되어온 청년실업문제도 그 하나의 상징일 것이다. 그러나 거시적 관점에서 보자면 문제는 그 뿐만도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도무지 ‘인정’(認定)이라는 것이 없다. 30년, 40년의 세월을 거쳐 한 훌륭한 인재가 자라나더라도 그 훌륭함에 대한 인정은커녕 무시, 시기, 경계 등으로 밟거나 잘라버리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제대로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 사회적 손실을 우리는 생각해본 적이나 있는 것일까.

고약한 인간들이 그 고약함을 도구 내지 무기로 삼아 기회를 얻고 권력을 장악해 훌륭한 인재들에게 바리케이드를 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내가 아는 어떤 후배는 머리도 좋고 노력도 많이 해 유럽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했으나 끝내 세상을 위해 제대로 일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는 실의와 좌절로 스스로 이 미운 세상을 버리고 말았다. 또 다른 한 지인은 미국의 초일류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외국의 초저명대학에서 오랜 세월 교수로 활동했음에도 정작 국내에서는 일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강원도의 한 외진 곳에서 칩거하듯 지내고 있다. 우리 사회는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 무수한 벽들로 사람을 가로막는 ‘벽의 사회’가 되고 말았다.

인재에 대한 아까움 내지 안타까움은 그 뿐만도 아니다. 설혹 그 인재가 제대로 그 역량을 평가받아 세상에서 활약을 했다 하더라도 그들도 언젠가는 정년을 맞거나 혹은 늙고 병들거나 혹은 사고를 당하거나 해서, 그리고 또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함으로 해서 더 이상 그들의 내부에 축적된 재능을 발휘할 수 없도록 되고 마는 것이다. 세월 속에서 쌓아온 모든 것이, 저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 그것으로써 한꺼번에 초기화되고 리셋 된다. 제로가 되는 것이다. 그 누구도 그들의 그 ‘인재성’을 그대로의 모습으로 대신할 수 없다. 재현할 수 없다. 참으로 아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자연법칙의 한 부분이라 어찌할 도리도 없다.

그나마 우리가 그 아까움을 줄일 수 있는 것은 그들로부터 그들이 그들의 세월 속에서 이룩한 바를 배우는 것이고 본받는 것이다. 그러한 노력이 아마도 우리 자신이 인재로 자라기 위한 ‘한 30년’에 포함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당연한 말이지만, 그 인재들이 그들의 역량만큼 제대로 인정을 받고 기회를 얻어 세상을 위해 쓸모있게 쓰여질 수 있도록 알아보고 그리고 알아주는 것이다. 잘 살펴보라. 바로 당신의 가까이에 그 누군가가 없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들을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일까. 그런 그들을 위해 코웃음 대신에 박수를, 무시나 폄하 대신에 위로와 격려를 보내도록 하자.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것도 하나의 ‘애국’이라고, 세상을 위한 기여라고, 그렇게 나는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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