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 나
평범한 사람 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9.22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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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내 트친 중에 전우용 선생님이 계신다. 그분이 오늘 아침 트윗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상을 망치는 건 희대의 악마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의 부도덕이다” 나는 잠시 뇌리가 먹먹했다. 다 아는 얘기인데도….


실은 이 말을 들었을 때 먼저 떠오른 생각은 나의 평범한 이웃에 대한 것이었다. 학원을 몇 년을 보냈는데도 성적이 제 자리라고 하면서도 학원을 끊지 못하는 이웃, 가난한 옆집 사람에겐 인사도 안 하다가 돈 많은 이웃이 지나가면 굽신굽신 절을 하는 이웃, 등 부도덕한 짓을 말이다.

다음 순간 나는 이웃보다 나 자신은 평범한 사람으로서 부도덕을 저지르고 있지는 않는지 먼저 생각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물론 타인의 잘못을 타파하는 것도 선행을 행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하지만 옛말에도 자신을 먼저 닦고 남을 살피라고 했으니 나의 부도덕을 낱낱이 살펴봐야겠다. 오늘의 해는 아직 다 하지 않았으니 어제의 나의 부도덕을 돌아봐야겠다.

그러고 보니 어제의 내 ‘하루일상’은 참으로 화려(?)했다. 지난 봄 부터 단편소설 한 편을 만들어내야 했다. 날이라도 선선해지면 집필에 들어가야지 하며 어쩌고 저쩌다 보니 마감인 9월 말이 바로 코앞이었다. 부랴부랴 집필에 들어간 게 지지난 주였다. 다행히 나는 글을 쓰라는 게 팔자에 끼여 있었던지 마음 먹으면 이틀 정도면 단편 분량 정도의 초고는 뽑아낸다. 지지난 주말 토요일과 일요일에 후다닥 초고를 뽑아냈다. 그리고 지난 주 내내 짬짬이 디테일에 주력했던 터라 몸이 죽겄다고 발광을 해도 엄살만은 아니었다. 진짜 피곤하던 것이다.

문제는 할 수 없이 커피를 마셨다는 거다. 나는 커피 중독자인데 금단형상이 짜증으로 나타난다. 커피 기운이 몸 속에 있는 몇 시간 동안은 정신이 말똥말똥하여 집중력도 배가되는데 커피 기운이 떨어지고 나면 불쑥 짜증을 내고 화를 내는 것이다. 미련스럽게도 이 현상마저도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서야 알아차렸다. 게다가 커피 소비 자체가 대기업을 살찌게 하는 악행이라는 것까지 생각하면 커피를 마시는 것 자체가 악행이다.

이 짜증으로 이미 두 아이를 망쳤다. 큰 아이는 ‘소심증’으로 사소한 일도 정면 돌파를 못하고 소소한 거짓말로 해결하려한다. 금방 뽀록이 나서 매를 번다. 작은 아이는 ‘애정결핍증’으로 뻑 하면 아무도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삐죽거리고 사랑을 주어도 주어도 자꾸 달라고만 해서 특히 가족들을 질리게 한다.

어제 일요일에 아침, 잠을 깨기가 너무 힘들고 짜증이 일었다. 그 놈의 커피를 마신 탓에 숙면을 취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관찰한 결과로 커피를 끊고 몸이 맑은 상태라면 3~4시간만 숙면을 취하고 나면 일어나는 몸이 가볍고 기분도 비교적 상쾌하다. 일요일이라고 출근하지 않고 아침부터 이방 저방 왔다갔다하는 남편이 내 짜증의 첫 타겟이 됐다. 두어 번은 참아주더니 기어이 화를 내며 내 짜증에 대들었다. 꼼짝없이 육두문자가 오가는 부부싸움이라는 올가미에 걸려들 수밖에. 사소한 짜증을 참지 못하고 육두문자로 싸운 것, 첫번째 부도덕이었다.

뭔가 잘못 돌아간다는 걸 알면서도 쉬이 그치지 못하는 게 감정이다. 울그락 푸르락 하고 있는데 일요일 늦잠을 자던 아이들이 깨면서 일은 더욱 꼬여가더란 말이지. 작은 아이가 정규 종교모임에 참석하려고 꽃단장을 하는데 처음 산 일회용 염색약이 문제를 일으켰다. 불량품으로 새로 갈아입은 옷까지 망쳐버렸다. 다시 머리를 감고 하는 꼴을 보니 짜증에 화까지 불이 붙어버렸다. '지 애비를 닮아 저 모양'이라고 또 온갖 육두문자가 온 집안을 난무했다. 참 사는 거 징그럽지. 자식에게 악담을 했으니 두 번째 부도덕이 자행됐다. 악담을 먹고 자란 자식이….

집구석이 난리도 아닌데 외박을 한 큰 아이가 돌아왔다. “어머니 다녀 왔소!”하는 한 마디에 짜증과 화가 수그러들었다. 큰 아이를 보면 나는 요즘 심한 죄의식을 느낀다. 유아기와 청소년기에 너무 모질게 때렸던 일 때문이다. 아들을 맞아들여 식사를 챙겼지만 이 역시 지금 생각해보니 편애라는 부도덕이네? 내가 미친다 미쳐. 언제 철들런지.

하루에도 몇 번을 철이 들었다 말았다 해도 끝까지 철들기를 포기하진 말아야겠다. 진실로 진실로 선행만으로 하루 24시간이 차곡차곡 채워지기를 가슴 깊이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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