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선은 어디까지일까?
상식선은 어디까지일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9.28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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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영숙/영산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내 시각이 편협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난 오늘도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는 내 상식선이 변화를 해야 하는 것에 대해 깊은 생각에 빠진다. 나 살기 바쁜 시절에는 주변을 돌아볼 상황이 아니었기에 안 보였을 수도 있겠지만, 요즘의 나의 눈에는 ‘이쯤은 서로에게 배려해야 하지 않나?’,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거야?’라는 말을 내뱉을 때가 자주 생긴다.


오늘도 교차로에 서서 택시를 잡겠다고 서 있는 아줌마. 본인은 인도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십자 교차로이기에 차량이 지나가게 비켜서야 하는데 안 보이는 모양이다. 인도가 좁은 도로에 양옆으로 주차된 차들이 있는 도로 때문에 차로로 걸어갈 수밖에 없겠지만,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차도를 걷고 있는 학생. 자전거를 타고 도로 한가운데를 질주하는 자전거 동호인들의 행렬. 이차선 도로에서 핸드폰 통화를 한다고 중간에 비상등을 켜고 통화를 하고 있는 운전자. 친구가 오기를 기다리는지 일차선 도로 중간에 차를 세우고 비상등을 켜 놓은 운전자. 그 곳을 지나는 차는 어쩔 수 없이 중앙선을 넘어 운전해야 하는 위험한 상황을 만드는 것 또한 잘못된 상식에서 비롯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좁은 주차장에 세울 수 있는 차가 한정되어 있으니 다들 시간에 쫓기고 바쁜 마음에 주차선이 없는 중간 위치인 차량 이동 부분에라도 차를 세우고 급한 일을 보러 갔을 것이다. 조금의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전화번호 정도는 남겨 놓는 것이 기본 예의이지 않을까 싶다. 또한 전화번호를 남겨놓은 사람도 차량을 이동해 주기를 바라는 전화를 받았다면 기다리는 사람을 생각해서 하던 일을 멈추고 내려와야 하는 게 아닐까. 아니면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얘기로 양해를 구하는 것이 기본적인 예의라 생각한다.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 우리, 나 또한 마음에 여유가 부족하고 조급증에 시달리는 현대인이 되어버렸다. 내 주변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무관심하게 되고, 타인에 대한 배려 보다는 나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생각,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는 우리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잘 살아남는 방법은 어떤 것일까?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어릴 때부터 분명 배웠거늘 조그마한 일에도 상처입고 힘들어한다. 정의란 무엇인가, 인간관계, 행복, 대화법 등의 주제를 다루는 강의가 인기 있는 것을 보면 많은 현대인들이 동일하게 힘들어 하는 부분이란 생각도 든다.

수업시간에 지켜주면 좋겠다는 규칙들을 개강 첫 시간에 항상 언급을 한다. 수업시간 엎드려 잠을 청하는 학생을 어떻게 해야 할까? 얼마나 힘들면 저렇게 곤하게 자는 걸까 하는 마음에 내버려 두고 싶지만, 비싼 수업료를 내고 힘들게 학교에 온 학생이기에 난 흔들어 깨워본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미안한 얼굴들을 하지만, 어떤 학생은 “왜요?”라는 말을 먼저 내뱉는 태도는 나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핸드폰을 꺼내들고 친구와 채팅에 열중하는 학생. 디지털 세대이니 핸드폰에 빠져 있는 것을 뭐라 하겠는가?

부모는 아이들에게 윗사람에 대한 예의, 남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와 예의라는 것을 가정에서부터 아이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기본 상식이 서로 통하고, 공중도덕과 질서가 지켜지는 성숙한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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