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정치(中國政治)의 전개과정(Ⅱ)
중국정치(中國政治)의 전개과정(Ⅱ)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11.02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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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웅/국립경상대학교 인문대학 명예(강의)교수·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장·지리산 막걸리학교 교장

지난번에 이어서 중국정치의 전개과정에 대해 알아보겠다.


‘시경’, ‘서경’, ‘국어(國語)’, ‘좌전(左傳)’, ‘예기(禮記)’, ‘여씨춘추전(呂氏春秋傳)’ 등을 비록한 각종 전적에 인본(人本) 혹은 민본사상의 원류는 팽배할 만큼 넘치고 있는바 왕운오(王雲五)는 그 자료를 애민(愛民)·이민(利民)·치민(治民)·제민(制民)·내민(來民)·일민(壹民)·안민(安民)·교민(敎民)·양민(養民)·해민(害民)·노민(勞民) 등과 민심(民心)·민본(民本)·민귀(民貴)·민지빈부(民之貧富)·민락(民樂)·민이사(民易使)·민란(民亂)·민행(民幸)·민외(民畏)·민력(民力)·민시(民時)·민부(民賦)·민지치(民知恥)·민여법(民與法)·민교(民敎)·민동(民同)·민승(民勝) 등으로 분석했다.

이 분석을 통해서 하늘(天)과 백성(民)을 동률시함으로써 경천(敬天)은 곧 외민(畏民)과 결부되는 민본사상을 족히 더듬을 수 있다. 다시 요약하면 하늘이 보는 것을 백성도 보고 하늘이 듣는 것을 백성도 듣는다는 민심은 곧 천심이라는 정치의 원칙을 공고히 한 것이다.

민본을 중시한 나머지 어떤 현대 학자는 아예 중국 정치사상을 국민 중심의 ‘민학(民學)’이라 일컫는 예도 있거니와 ‘간접적인 천치(天治)주의’로 보아 그 천민(天民)의 상대 관계를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평등을 지향할 뿐, 정치는 상등계급에 국한했고, 천자는 백성을 존중할 뿐 백성에게서 권리를 수여받는 것은 아니었다. 옛날에도 ‘민주’란 말은 있었지만 군주(君主)의 뜻이었고, 오늘의 ‘민주’와 ‘민본’은 그 권리의 원천에 기준할 때 서로 내용이 달랐고, ‘민주’는 오히려 옛날의 ‘민치(民治)’에 상당했다. 즉 치자와 피치자의 관계를 두고 말할 때 천자는 비록 민명(民命)을 받들며, 백성을 두려워하지만, 그 권리를 아래로부터 얻은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내려진 점에서 오늘의 민주정치와 다른 것이다.

이런 민본사상이 천의(天意) 정치에서 유래되었다면, 국가의 구성이란 가족의 확대로 이루어졌고, 동시에 윤리사상에서 연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정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엄숙한 기존 질서에 의해 발전되는 윤리정치다. 윤리는 개인과 가족 그리고 사회와 국가에도 적용되었다. 가족의 화합은 물론 천하의 안정으로 연관되는 것이었다. 곧 가국일리(家國一理)란 원칙이 일찍이 성립된 것이다. 따라서 효(孝)와 충(忠)은 근본상 동질의 요소로 다만 선후 관계에 놓인 것이다.

가족의 확대가 국가라는 사상은 급기야 온 지구상의 나라들이 한 집안이라는 사해일가(四海一家), 곧 천하주의(天下主義) 사상으로 발전했다. 때문에 사실상 천자를 중심하면서도 중앙집권이 아닌 봉건제도 즉 천하를 위해 대통일은 될지언정 통치가 될 수 없는 봉건제도를 용납하게 되었으니 천하주의적 정치사상은 중국 유가의 최고 이상이 되어 왔었다.

이 밖에도 이미 덕치주의의 제창 또한 정치풍토의 주맥을 일구게 했다. 폭정은 결코 무너진다는 철칙 아래 덕치와 인정(仁政)을 강조했다. 물론 공자에 이르러서야 덕정(德政)이라는 기치가 분명해졌지만, 백성에게 관용을 강조하거나 백성을 친절히 공경하라는 삼대의 기록을 통해서 이미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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