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정치(中國政治)의 전개과정(Ⅲ)
중국정치(中國政治)의 전개과정(Ⅲ)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11.1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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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웅/국립경상대학교 인문대학 명예(강의)교수·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장·지리산 막걸리학교 교장

지난주에 우·하·은·주대의 정치사상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많은 전적에 나타나듯이 그렇게 안정되고 평화로운 것은 아니었다. 요순(堯舜) 때라도 사회는 문란했고 어려웠다. 오히려 유가들에 의한 미화나 동경의 목표를 향한 이상론의 서술이었는지도 모른다.


삼대에 있어 정치제도로서 형태를 갖춘 것은 주(周)대의 봉건제도에서 비로소 논급될 수 있겠다. 다만 그 기초를 소급한다면 봉건제도에 앞서 은·상대에는 이미 군주제도의 필요가 대두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군주를 추대해야 될 필요와 여건은 주장한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르지만, 대개 치자와 피지차의 윤리적인 질서를 수립하기 위해서든지, 우매한 백성을 교화시키거나 백성의 지혜를 계발하기 위한 수령으로 군주를 옹호했고, 군주의 자격은 전자를 충족시킬 수 있는 최상의 지혜, 최상의 능력, 최고의 인격을 갖추어야 했음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종법(宗法)제도를 배합한 주대의 봉건제도는 천자에서 사(士)에 이르기까지 보탑(寶塔) 형식의 조직을 가져, 천하를 천자·공·후·백·자남 등 5등급으로, 한 나라를 군·경·대부·상사(上士)·중사·하사 등 6등급으로 분류하며, 동시에 그 전록(田祿)도 천자는 1천리, 공·후는 100리, 백은 70리, 자·남은 50리 등 4등급으로 그 방위(方圍)를 갖게 했다.

천자(天子)에 의해서 존폐가 결정되는 봉건제도는 천자와 제후 사이에 비록 체제는 같지만 각 제후국에서 자치권을 행사할 수 있게 분화(分化)시킨 공능과 봉건제도를 통해서 많은 이질적인 저류 문화를 하나의 고도 문화의 총체 속에 동화(同化)시킨 두 가지 공능을 발휘했었다. 바꾸어 말하면 봉건제도로 말미암아 대민족의식을 형성했고, 정치상 대통일을 가져왔지만 결코 천자 한 사람에 의하여 통치되는 것은 아니었다.

한편 주대의 관제(官制)는 주례(周禮)에 보이는바 천자의 고문 역할을 맡는 태사(太師)·태부(太傅)·태보(太保) 등 삼공(三公)과 삼공을 보좌하는 소사·소부·소보 등 삼고(三孤), 그리고 실제 행정을 맡는 육경(六卿) 등 세 가지 분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행정부에 상당한 육경에는 국내 백관을 총 관장하여 지금의 총리에 상당한 천관총재(天官冢宰)를 비롯하여, 방교(邦敎)를 관장하며 치안을 돕는 지관사도(地官司徒), 방례(邦禮)를 관장하여 질서를 돕는 춘관종백(春官宗伯), 정사를 관장하는 하관사마(夏官司馬), 형정(刑政)을 관장하는 추관사구(秋官司寇), 공상업을 관장하는 동관사공(冬官司空) 등을 두었다.

그리고 삼대가 관할하던 강역을 보면, 하(夏)대에는 다만 하남성 서부 한쪽과 산서(山西)성 남부 및 섬서(陝西)성 동단의 협소한 땅이었고, 은대에는 노(魯)·예(豫)·기(冀)·진(晉)·섬(陝)·소(蘇)·환(晥) 등 7개성을 거의 차지할 정도로 넓혔으며, 주대에는 현재의 화북 대부분돠 남쪽으로 양자강 및 한수(漢水) 유역까지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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