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면 고향 생각이 난다
계절이 바뀌면 고향 생각이 난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11.2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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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나의 고향은 덕유산 심심산골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을 떠나 나이 일흔이 되도록 아직까지 고향으로는 돌아가지 못하고 객지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으며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가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객지에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닐 때 한 번씩 고향에 들리게 되면 내가 태어난 고향은 너무 깊은 첩첩 산골이라 내 평생에는 자갈길이 콘크리트로 포장된 도로에 차가 쌩쌩 달리는 것을 보기는 불가능하리라고 생각을 굳혀버리곤 했었는데 그곳 산골인 우리 동네 앞에도 고속도로가 뚫려서 그렇게도 적막하던 산골에 지금은 고속으로 내어 달리는 자동차 소음 때문에 밤잠을 설치게 되고 집집마다 자동차가 있고 집들은 오히려 도시의 집들보다 더 곱고 아담하고… 소득은 도시의 가구보다 훨씬 더 높은 풍요로운 고향이 되었다.


조상의 뼈와 혼이 묻혀있는 고향… 생각만 해도 푸근하고 되돌아가고 싶은 곳이다. 그러나 이제는 객지에서 떠돈 세월이 너무 길어서 고향이라는 곳이 너무 먼 곳이 되어 버렸다. 이런 생각을 할 때 마다 세상의 무상함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객지에서 떠돌면서 직장생활을 할 때는 은퇴하면 고향으로 돌아가 내가 태어났던 오두막 초가집에 새롭게 아담하게 집을 지어 여름이면 냇가에서 멱도 감고 가을이면 뒷산에 올라가 송이버섯도 따고 겨울이면 눈 덮인 뒷산에 옛 친구들과 토끼사냥도 해 보면서 여생을 보내야겠다고 다짐하곤 했었다.

누구나 다 한번쯤 고향을 그리워 해 보는 동경의 그림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어느덧 세월은 나에게 백발이라는 큰 선물을 머리위에 얹어주고 있음을 새삼스럽게 깨닫고 느끼게 되었다. 나의 고향 사투리는 경상도 사투리 중에서도 더욱더 투박한 사투리이다. 객지에서 어쩌다가 그쪽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을 만나면 당장 고향 곳의 사람이란 것을 사투리에서 알아 볼 수 있게 된다. 가끔 고향을 방문해 보면 젊은이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어디서 온 사람이냐고 묻기도 한다. 젊은 시절 주인 노릇하던 고향이 이제는 그저 한 번 쯤 가끔 들러야 하는 객의 신세가 되었음을 느끼게 된다. 이럴 때면 가슴 깊숙이 서글픔이 밀려오기도 한다.

고향을 떠나온 객의 몸이 된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야 할 기회는 명절 때나 휴가 때나 성묘 때나 동창회 때나 고향에 특별한 길·흉사가 있을 때나 또는 시제(時祭:일명 묘사)때 등이다. 계절이 바뀌어 음력 상달 이라고 하는 시제의 계절이 닥아 왔다. 금년에는 음력 윤 구월이 있어서 여느 때 와는 달리 한 달 쯤 늦게 시제를 맞이하게 되었다. 어느 시인은 봄이 되어 온갖 산하에 풀이 돋아나고 나무들에게서 새 잎이 돋아나면 산의 몸피가 늘어나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지난 양 12월 22일(음 10월 1일)부터 시제가 시작되는 계절이 되었다. 시제 때가 닥아 오니 고향이 더욱 그리워진다. 이번 시제는 낙엽이 떨어지고 난 늦게 찾아온 때가 되어 고향 산의 몸피가 줄어든 모습을 볼 것 같다.

오늘도 나는 객지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당나라 시인 하지장(賀知章:659∼744)의 시 〈고향에 돌아온 심정을 적다〉와 통도사 문수원에서 수행 정진하면서 선화(禪畵)의 경지를 개척하고 있는 수안(殊眼:1940∼2014년 현재75세)스님의 시 〈사모곡(思母曲)〉을 되새겨 보면서 나의 자작시 〈고향〉을 지하에 게시는 어머니 묘소에 바치고 싶다.

〈고향에 돌아온 심정을 적다〉:젊어서 고향 떠나 늙어서야 돌아오니/ 시골 사투리는 변함없으되 머리털만 희었구나!/ 아이들은 서로 바라보나 알아보지 못하고/ 웃으며 어디서 온 나그네냐고 묻네.

〈사모곡〉:나 훌훌 벗어 던지고/ 고향으로 가리라/ 고희가 넘으신 어머니 눈에는/ 철없는 개구쟁이로/ 나/ 돌아가리라/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지만/ 세상 다 돌아봐도 쉴 곳이 없으니/ 작은 가슴 할딱거리며/ 나/ 어머니 품으로 가리라/ 바람에 날리운 어머니 하얀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빗질해 드리고/ 따끈한 차 한 잔 대접하는 개구쟁이 효자로/ 나/ 돌아가리라/ 봄이면 개울 속에 지천으로 피어 떨어지는/ 살구꽃 발그레 닮은 아이들 뛰는 모습 바라보며/ 넘치지 않는 작은 소망을/ 뒷 남새밭에 심으려/ 나/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고 향〉:계절이 바뀌면 그리워라/ 고향/ 더우면 더울세라/ 추우면 추울세라/ 땅속에 누워계신/ 어머니/ 더울세라 추울세라/ 꽃구경 갈세라/ 단풍구경 갈세라/ 이승에서 못가 본/ 꽃구경… 단풍구경…/ 저승에서나/ 실컷 하세요/ 어머니…

이번 시제 때는 지하에 게시는 어머니 산소에 가서 평소에 보살펴 드리지 못했던 불효를 한탄하면서 실컷 울어나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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