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그늘·유음(遺蔭)
남아 있는 그늘·유음(遺蔭)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12.08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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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 전)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

인류학자들에 의하면 세계문화사상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그 하나는, 사람은 죽음과 함께 그가 살았던 사회를 완전히 떠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행해지는 장례와 제사는 죽은 사람의 흔적을 이 세상에서 빨리 지우고, 그의 영혼이 죽음이후의 세상에서 행복하게 머무르도록 하려는 의식의 성질을 띤다고 한다. 그의 영혼이 혹시라도 이 세상에 떠돌면서 산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를 “사자의례(死者儀禮)”라고 한다.

다른 하나는, 사람은 죽은 뒤에도 살아 있는 사람들과 상호관계를 계속 지속한다고 믿는 태도이다. 그리하여 장례 절차는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면서도, 한편으로 새로운 모습으로 이 세상에 모셔 오는 과정이기도 하다. 또한 제사는 죽음 사람과 산 사람 사이의 관계를 재확인하고 또 강화하려는 의도를 갖는다. 이를 “조상숭배(祖上崇拜)”라고 한다. 물론 조상숭배의 구체적인 방식은 민족마다 다를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자신의 존재 근원의 의미로 조상을 자신들 속에 편입시키고 부활시켰다. 그 예로 조상이 신주의 형태로 사당에 모셔져 아침저녁으로, 또는 무슨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배례를 받아왔다. 그리하여 조상숭배 의식은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유대를 유지시켜 주는 강력한 심리기제로 작용하여 왔다. 제사를 지내면서 읽는 축문이 그 한 가지 예다. 그것은 후손들이 돌아가신 선조를 불러내어 서로 마음을 나누는 하나의 형식이다. 그리하여 그러한 행위가 삶과 죽음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화해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우리 선조들이 죽음의 불안과 두려움을 적게 가졌던 한 가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들이 자신의 수의(襚衣)를 직접 지어 입어 보기도 하고, 또 자신이 묻힐 묏자리를 미리 치표해 두기도 했던 사실을 생각해 보면 그들이 각종 방식으로 조상과의 관계를 지속해 온 것처럼, 자신도 뒷날 후손들과 관계를 계속 유지하리라고 기대했기 때문에 죽음을 마치 일상의 일처럼 받아들였던 것이다.

조상숭배 의식이 갈수록 약해져 가는 오늘날 나이가 들수록 종교에 귀의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종교는 제각기 특유의 방어기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의 극락세계나 기독교의 천국이 그 대표적인 유형이다. 우리나라 전례(前例)의 조상숭배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명절 때 “민족의 대이동”이라 불릴 만큼 많은 사람들이 대거 귀향하여 차례를 지내고 또 성묘를 하는 모습은 이러한 관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조상숭배는 쓸데없는 미신이 아니라 우리들 삶의 훌륭한 지지대이다. 일부 종교에서는 제사를 두고 귀신숭배의 미신행위라고 하지만 제사는 죽은 자와 살아있는 후손들과 만나는 “특별한 형식의 낭만적인 효도행위”이다. “낭만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제삿밥에 숟가락을 꽂고 술잔에 첨잔을 하는 등 일련의 의식들이 허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들을 진지하게 진행했던 것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은 영원히 살기 위해 신을 상상해 냈다.」라고 했다. 그래서 종교는 이러한 상상력의 산물이기도 하다.

부처님께서는 열반(涅槃)에 드실 때 뜻을 세 차례나 아난존자에게 말씀했다고 한다. 당연히 시자(侍者)는 그때마다 「오래 이 세상에 머무시어 무수한 사람이 이익과 안락을 얻게 하셔야지요.」라고 간곡히 부탁했어야 했다. 그런데 시자는 무슨 일인지 가만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두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가섭존자는 이 부분을 서운케 여겼던 것이다. 이에 아난존자는 부처님의 그 말씀을 듣지 못했노라고 변명했다. 「사형 스님! 내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마(魔)가 내 마음에 붙어 나로 하여금 부처님의 그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여 이 세상에 더 머무시도록 청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부처님께서 돌아가신 것이 아난존자가 말리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겠지만, 어쨌거나 아난존자는 이 일로 대중 앞에서 참회를 하게 된다. 선종(禪宗)에서는 이를 적극적인 의미로 받아들였다. 즉 세존은 본래 백수(百壽)를 누리셔야 했다. 그러나 일부러 여든 살에 열반에 드셨다. 왜일까? 당신이 누릴 이십 년의 복을 남겨서 남아 있는 제자들에게 돌려주기 위한 자비심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를 우리는 “세존 이십 년의 남아 있는 그늘 즉 유음(遺蔭)”이라고 부른다. 세존께서 남겨주신 유음으로 진리의 수레바퀴가 오늘날까지 굴러오고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음력 시월 묘사(墓祀)의 철이 되었기에 한 번 되새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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