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라는 이름과 함께 일반인들에게도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누가 붙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염세주의라는 이 꺼림칙한 이름 때문인지 혹은 그의 그 괴팍한 성격 때문인지 사람들이 그에 대해 갖는 인상은 그렇게 썩 좋은 편은 아닌 것 같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그런데 강단에서 그의 삶과 사상에 대해 가르치게 되면서 이런 사정이 조금은 달라졌다.
그가 헤겔을 싫어한 것도 이유가 있었다. 쇼펜하우어는 아버지 때문에 하고 싶은 공부를 하지 못하고 장사를 배워야만 했다. 상인이었던 아버지는 어쩌면 ‘그까짓 돈안되는 공부 따위…’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다. 다행히 머리가 좋았던 그는 뒤늦은 공부를 단숨에 따라잡았고 이윽고 대학교수직에도 도전했다. 그가 베를린 대학에 지원했을 때 심사위원 중에 그 유명한 헤겔이 있었다. 그는 쇼펜하우어에게 까다로운 질문을 던져 그의 자존심을 몹시 상하게 했다. 강단에 서게 된 그는 자신감과 경쟁심으로 일부러 헤겔과 같은 시간에 그의 강좌를 개설했다. 결과는 참패. 헤겔의 강의실은 학생들로 넘쳐나는데, 쇼펜하우어의 강의실은 단 한명, 그것도 잘못 들어온 학생, 뿐이었다. 심각하게 마음을 다친 그는 강단을 떠나 평생을 재야철학자로 지내게 됐다. 헤겔이 이쁠 턱이 없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키우던 푸들에게 헤겔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화가 나면 그 녀석을 집어차면서 분풀이를 했다고도 한다.
각설하고, 이런 쇼펜하우어의 사정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를 그저 ‘이상하고 별난 사람’이라고 매도만 할 수는 없게 된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가 라이프니츠를 이어 강조한 논리학의 기본원리 중에 ‘충족 이유율’이라는 것이 있다. ‘모든 것에는 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모든 것에는 그 이유가 있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싫어하는 경우라면 특히 그렇다. 우리는 그런 그를 혹은 그녀를, 무조건 나쁘다고 나무라고 탓하고 비난하고 배제하기 전에 한번쯤은 그의 입장에서 그 이유를 생각해봐 주는 것은 어떨까.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알려주는 대로 우리들이 사는 이 세상, 이 인생은 너 나 할 것 없이 어차피 고통으로 가득 차 있고, 우리 인간들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다 불쌍한 존재인 것이다. 그 불쌍함에 대한 공감이 바로 그 고통에서 약간이나마 벗어나게 해주는 통로의 하나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모두에게 그것을 권하고 싶다. 동병상련. 그것은 불쌍한 우리 모두에게 하나의 작은 구원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쇼펜하우어를 가련하다고 느낀다. 딱하다고 느낀다. 불쌍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그에게 동정이 간다. 나 또한 그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가련하고 딱하고 불쌍한 한 사람의 인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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