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에게 보내는 위로
쇼펜하우어에게 보내는 위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12.11 19: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라는 이름과 함께 일반인들에게도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누가 붙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염세주의라는 이 꺼림칙한 이름 때문인지 혹은 그의 그 괴팍한 성격 때문인지 사람들이 그에 대해 갖는 인상은 그렇게 썩 좋은 편은 아닌 것 같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그런데 강단에서 그의 삶과 사상에 대해 가르치게 되면서 이런 사정이 조금은 달라졌다.

쇼펜하우어는 끔찍하게 싫어하는 것이 세 가지가 있었다. 소음, 여자, 그리고 헤겔이었다. 소음은 그렇다 쳐도 여자와 헤겔? … 별나다면 확실히 별난 편이다. 나도 성격상 별난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에게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여자를 싫어한 것은, 우선은 아마도 그의 어머니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의 어머니 요한나는 작가였는데 상인이었던 남편 하인리히가 일찍 세상을 떠난 후 그가 남긴 막대한 유산으로 살롱을 차려 이른바 사교계의 스타로 활동했다. 아들은 그다지 안중에 없었다. 그녀는 괴테와도 친분이 있었고 그런 친분은 어린 쇼펜하우어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이 어머니는 아들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도 않았다. 아들이 책을 내었을 때도 혹평과 악담을 서슴지 않았다. 아들도 만만치 않아 ‘어머니의 책들이 사람들에게 완전히 잊혀졌을 때도 제 책은 서점에서 여전히 팔리고 있을 겁니다’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그의 말은 오늘날 현실이 되었다. 여자를 싫어하게 된 또 한 가지 이유는 하숙집 하녀 마르케트였다. 소음을 너무너무 싫어했던 그는 그녀가 내는 소음을 참지 못하고 그녀를 집어던져버린 일이 있었는데 그 때문에 그녀는 심각한 장애를 갖게 되었고 그는 평생토록 그녀에게 연금을 지급하도록 판결을 받았다. 이러니 여자가 좋을 턱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모든 여자를 그저 맹목적으로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그도 몇 차롄가 여자에게 사랑을 느낀 적이 있었는데 한번은 머뭇거리는 사이에 다른 남자에게로 가버렸고 또 한 번은 잘생긴 영국의 시인 바이런에게 그 사랑을 빼앗겨버리고 말았다. 그에게도 연애미수사건이 있었던 셈이다. 자신이 갖지 못할 거라면 마음을 멀리하는 것, 그것은 인지상정이다. 이솝의 ‘배고픈 여우’도 그 점을 잘 알려준다.
그가 헤겔을 싫어한 것도 이유가 있었다. 쇼펜하우어는 아버지 때문에 하고 싶은 공부를 하지 못하고 장사를 배워야만 했다. 상인이었던 아버지는 어쩌면 ‘그까짓 돈안되는 공부 따위…’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다. 다행히 머리가 좋았던 그는 뒤늦은 공부를 단숨에 따라잡았고 이윽고 대학교수직에도 도전했다. 그가 베를린 대학에 지원했을 때 심사위원 중에 그 유명한 헤겔이 있었다. 그는 쇼펜하우어에게 까다로운 질문을 던져 그의 자존심을 몹시 상하게 했다. 강단에 서게 된 그는 자신감과 경쟁심으로 일부러 헤겔과 같은 시간에 그의 강좌를 개설했다. 결과는 참패. 헤겔의 강의실은 학생들로 넘쳐나는데, 쇼펜하우어의 강의실은 단 한명, 그것도 잘못 들어온 학생, 뿐이었다. 심각하게 마음을 다친 그는 강단을 떠나 평생을 재야철학자로 지내게 됐다. 헤겔이 이쁠 턱이 없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키우던 푸들에게 헤겔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화가 나면 그 녀석을 집어차면서 분풀이를 했다고도 한다.
각설하고, 이런 쇼펜하우어의 사정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를 그저 ‘이상하고 별난 사람’이라고 매도만 할 수는 없게 된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가 라이프니츠를 이어 강조한 논리학의 기본원리 중에 ‘충족 이유율’이라는 것이 있다. ‘모든 것에는 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모든 것에는 그 이유가 있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싫어하는 경우라면 특히 그렇다. 우리는 그런 그를 혹은 그녀를, 무조건 나쁘다고 나무라고 탓하고 비난하고 배제하기 전에 한번쯤은 그의 입장에서 그 이유를 생각해봐 주는 것은 어떨까.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알려주는 대로 우리들이 사는 이 세상, 이 인생은 너 나 할 것 없이 어차피 고통으로 가득 차 있고, 우리 인간들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다 불쌍한 존재인 것이다. 그 불쌍함에 대한 공감이 바로 그 고통에서 약간이나마 벗어나게 해주는 통로의 하나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모두에게 그것을 권하고 싶다. 동병상련. 그것은 불쌍한 우리 모두에게 하나의 작은 구원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쇼펜하우어를 가련하다고 느낀다. 딱하다고 느낀다. 불쌍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그에게 동정이 간다. 나 또한 그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가련하고 딱하고 불쌍한 한 사람의 인간이니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